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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린아 시인 / 코끼리
코끼리는 크고 둥그런 귀로 하늘을 날지요
천적이 없는 코끼리는 그래서 뒤로 걸을 필요가 없고 오래된 기억을 길게 가지고 놀아요
하지만 그것은 곧 죽을힘을 다해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오래된 기억이 생긴다는 뜻이에요 입술과 코가 붙어있는 건 말 대신 원인을 찾는 데에 더 영리하다는 뜻이고 유별나게 크고 둥그런 귀는 자신의 비명을 영영 잊지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작은 상자의 칠일, 둔중한 막대기의 칠십 시간, 날카로운 꼬챙이의 칠십 리, 단단한 쇠사슬의 칠백 리 속에서 뒤로 걷는 법, 따끔거리는 막대기가 자신의 상아보다 더 작다는 걸 잊어버리는, 주춤거리는 놀이에요
삼백 리를 걸으면 우리는 코끼리의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아픔은 또 삼백 리를 지나 두건 속 빨간 별들을 쓰다듬어 주면 지워질 수 있고 그들의 그리움은 강 건너 맞은편 사탕수수밭을 지나 통나무 오두막에 닿으면 이해할 수 있고 두려움과 애틋함은 그들의 짓무른 발바닥이 벗겨질 때 까지 숨을 참고 여울 물 속을 건너면 깨달을 수 있대요
그 거리를 갈 수 있을 때에만 말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악랄함이란 연민은 철없는 코끼리가 되어 먼저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바라는, 살 끝에서 따끔거리는 오래된 기억이지요 코끼리도 뒤로 코를 구부리고 우리도 매일 엉덩이를 뒤로 빼며 인사를 하니까요
계간 『시인수첩』 2019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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