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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주희 시인 / 속눈썹의 오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1.

고주희 시인 / 속눈썹의 오후

 

 

빈 강당에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 선율

눈 밑에 드리워진 구름은

예보에 없는 여든여덟 개의 날씨를 새기지

 

한 눈으로 볼 때도 두 개의 사물이 겹쳐 보여

망고, 더 멀리 망고를 외치지만

이곳은 망고가 자라지 않는 곳, 결국

복숭아에 우울을 섞어 먹지

일 초는 달콤하게 일 초는 짜릿하게

 

우르두어를 쓰는 무슬림처럼

읽을 순 없지만 우아한 문체처럼

 

웃고 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드라마 때문인지 브람스 때문인지

검은 베일에 깃든 사적인 우주

왜 아무도 빛을 잃었다 말하지 않을까

 

도에서 라로, 라에서 나로 건너올 때

부서지고 쪼개지는 불면의 시차 時差

 

손톱이 닿지 않는 구름과 건반 사이

무반주도 반주도 아닌

 

계간 『시와 반시』 2018년 여름호 발표

 

 


 

고주희 시인

2015년 《시와 표현》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