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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유원 시인 / 다리와 물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1.

황유원 시인 / 다리와 물

 

 

다리 아래로 지금도 물은 힘차게 흘러가고 있고

흘러가고 말하는 사이에도 다른 물이 밀려와 저 너머로 다시

흘러가고 있고

흘러가고 있고 흘러가고 있고 모든 게 흘러가고 있고

다리는 굳건하고

다리는 흘러가는 물과 함께 늙어가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을 굽어보며

늘 처음인 듯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맞댄 사이인 듯

아무려면 어떠냐는 식으로 흘러가는 물을 쳐다보고

물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가 저 다리를 쳐다본 적이 있고

저기서 미련하게 자리를 지키며

멍청할 만큼 제자리를 지키며 물만을 바라보는

다리를 물은 사랑할 것도 같고

증오할 것도 같고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도 모두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가

다리는 마침내 늙어서 무너지고

물은 부서진 다리의 조각들을

자신의 깊은 곳에 가라앉히고

흘러가고 흘러가고 흘러가며

쓰다듬고 쓰다듬고 쓰다듬어

다리가 물과 섞여

더는 어느 게 다리고 어느 게 물인지

물도 다리도 이제는

알 수가 없고

 

계간『문예바다』 2019년 여름호 발표

 

 


 

황유원 시인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