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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 시인 / 나는 사진입니다
나는 사진입니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립니다 그러나 내가 속한 계절은 절대불변 늦은 가을입니다 몇 잎 단풍과 낙엽을 배경으로 나는 참 아름답습니다 중세의 가을 같은 배경은 천지개벽이 있더라도 내 공간에 파란 잎을 틔우지도 초롱꽃 한 송이 피어나게도 못할 것입니다 밖의 세상은 아프도록 순백이지만 나하고는 무관한 일입니다 나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진입니다 나는 여하한 경우에도 늙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낡아갈 뿐입니다 사람들은 싱그럽게 늙어가고 너무도 싱싱하게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렇지만 빛이 바래서도 나는 밝게 웃습니다 비바람이 치든 태양이 지글거리든 변함없이 환하게 웃어야 합니다 여하튼 그래야 합니다 나는 사진이기에 모두가 잠든 밤엔 묘비처럼 고독하지만 눈빛은 부드럽고 온화합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않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불면의 밤들을 눈 안에 차곡차곡 접어놓은 나는 추억의 배설물입니다 사람들은 잉여의 추억을 납작하게 인화하여 사각 틀에 가두곤 합니다 밖에는 눈발이 멈출 기미가 없지만 나의 감정은 오직 하나입니다 지상의 저녁과 엉킨 눈이 뿌옇게 흩날리는 것 어쩐지 쓸쓸하지 않은가요 하지만 내 표정은 한결같이 고정돼야 합니다 나는 사진이기에 어젯밤엔 말기 환자가 벽을 향해 나를 힘껏 던졌습니다 유리 파편에 얼굴이 찍히고 꾸겨졌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아니 행복해야 합니다 나는 무섭도록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사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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