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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형 시인 / 내게 있는 여름
저녁이 음악과 겹치는 지점에서 주로 잘 무르는 체질이다. 갈등의 입자를 여러 번 고쳐 썼다. 찐 호박잎과 깻잎에 나를 데리고 다니던 재래종 여름이 남아있다. 잠시 다녀가는 소나기에 새의 항문처럼 재빨리 오그리던 마른 흙냄새 같은 것들이 그렇다.
딸아이는 내 그때보다 주섬주섬 일찍 어른을 배우기라도 한 듯이 머리 색깔을 바꾸고 혼자 공항을 찾아 갔다. 잠자리 돋는 공중을 여러 번 올려다보는데 석양이 눈빛을 엎질러 내 등에다 덧댄다. 문 밖에 버티던 덩치 좋은 몸을 반쯤 털어내는 여름. 그리고 해 떨어지는 쪽으로 불쑥 고이려 드는 내 오래된 버릇들.
치자꽃 흰 가지를 꺾어 더 늘여 놓는다. 혼자라는 녹 슨 버릇.
저녁과 섞이려는 낮의 끄트머리가 수도원 입구처럼 낭만적이다. 어쩌자는 건지 눈이 자꾸 머들거린다. 물끄러미 서서 좁아지는 타인들. 물 가장자리를 찾아가 신발을 벗는다. 젖지 않은 돌들이 따뜻하다. 물에서 만들어진 딱딱한 검정들. 여기 남아 있지 않을 것들로 생이 넘친다. 거절당하지 않아서 멀리 가는 여름처럼. 내 안의 딱딱한 검정들처럼. 나를 자주 헛딛는 나 혼자처럼.
계간 『포지션』 2016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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