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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진혁 시인 / 접속사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2.

정진혁 시인 / 접속사

 

 

  그리고를 손에 들고 조금 울었다

  눈 코 입을 기억하는 일은 슬펐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난보다 더 질긴 접속을 남기고 갔다

  도처에 상처는 늘어나고 그 흉터마다 접속사 하나씩 자랐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가난은 적절한 접속이었고

  그러므로 가난은 간절한 접속이었다

 

  왜냐하면을 덮고 잠을 청했다 어떤 밤도 오지 않았다

  상처는 그러나 그리고 그래서 그러므로 늘 우리 곁에서 영역을 넓혔다

  미루나무 끝까지 접속을 밀어 올리기도 하고

  고양이의 눈 속에서 그런데를 찾아내기도 하고

  빨래 줄에 더구나를 말리며 변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언저리만 흔들릴 뿐

  물려주고 간 것이 접속사인 것 외에 알 수가 없었다

 

  접속이 안 되는 생 속에서 나는

  그러나 추잡한 속셈의 기다림일 뿐이고

  그래서 알아야 할 것보다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 해 여름 접속의 숲에서

  우리는 우리를 거부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사루비아는 빨강을 버렸다

  불타는 칸나처럼 누나는 집을 나갔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접속

  그래서

  아버지의 전생이 우리에게 왔다

 

  예컨대 접속은 자꾸 끊어지기만 했다

  내게 남은 접속은 상처가 다음 상처를 부르는데 사용될 뿐이었다

 

  접속을 껴안으면 피가 났다

  접속은 표정을 짓지 않았고

  우리는 자꾸 혼자가 되어갔다

 

  접속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버지는 갔다

  접속으로 불러들일 사람 하나 없이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그러므로 떠돌기만 했다

 

 계간 『문예바다』 2016년 겨울호 발표

 

 


 

정진혁 시인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등단. 시집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가 있음. 구상문학상 신인상, 천강문학상 수상 수상. 2013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