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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백인덕 시인 / 이월의 그림자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3.

백인덕 시인 / 이월의 그림자

 

 

  창틀이 운다.

  헐벗은 겨울나무 두 그루

  여윈 그림자마저 닿지 않아

  골목은 온통 얼음판이다.

  새벽 내,

  누군 미끄러져 눈알이 빠지고

  누군 또 팔목이 꺾이고

  아, 밤의 누군가는 미끄러지기도 전

  제 그림자를 풀어버렸다지만,

  방문 틈으로 독가스처럼 새어드는

  여린 기침소리, 멈추지 않는다.

  볼펜 끝을 하염없이 붓질하던

  더러운 손으로

  창문 안쪽의 심장을 더듬는다.

  곱게 빨린 세로 줄무늬 죄수복 아래

  뼈아픈 심지를 눌러 본다.

  아무래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삶을 모르는 겨울나무 두 그루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울고 있다.

  삶은 맞서야 하는 칼바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신발 아래 차갑게 끌어야 하는 헐거운

  수레가 아닐지도 모른다.

  창틀이 운다. 지난 겨울밤과 같이

  쇠와 나무 두 잇몸을 엇갈려 흔들리며

  덜, 덜, 덜,

  울음 끝에 서로를 풀어놓으려 한다.

  한밤을 지새워 배울 수 없었던 것은

  한 생을 태워 지워버려야만 한다.

  늘 새로 태어나는 것만이 아침의 숙명이니까.

 

웹진 『시인광장』 2016년 8월호 발표

 

 


 

백인덕 시인

한양대 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단단함에 대하여』 등이 있음. 현재 계간 『아라문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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