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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림 시인 / 징후
붉은 비가 내렸다
상한 우유에 빵을 찍어먹는 아침 식탁에 백년 후의 조간이 펼쳐져 있다
동맹이라도 한 듯 모든 견고한 것들의 흉곽이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만남과 이별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서 모호해졌다
어항 속에 근친상간한 물고기들이 늘어나 더 이상 헤엄쳐 다닐 데가 없다
낡은 피를 쏟아내듯 붉은 것만 보면 훔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달의 습격이 미치게 그리운 날은,
인간의 감정에 내장된 만능 칩 하나로 감정조절이 가능해졌다
쓰레기매립장이 넘쳐나고 썩어도 썩지 않는 대용량의 분노가 필요했다
장례식장이 장례예식장으로 바뀐 이후로 죽음에 대해 우아하게 말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싱크 홀 속으로 엄마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희망이라는 벌떼가 자기전복을 위해 날아들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날들이 도래할 것이다
월간 『현대시』 2016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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