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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해림 시인 / 징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3.

강해림 시인 / 징후

 

 

  붉은 비가 내렸다

 

  상한 우유에 빵을 찍어먹는 아침 식탁에 백년 후의 조간이 펼쳐져 있다

 

  동맹이라도 한 듯 모든 견고한 것들의 흉곽이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만남과 이별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서 모호해졌다

 

  어항 속에 근친상간한 물고기들이 늘어나 더 이상 헤엄쳐 다닐 데가 없다

 

  낡은 피를 쏟아내듯 붉은 것만 보면 훔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달의 습격이 미치게 그리운 날은,

 

  인간의 감정에 내장된 만능 칩 하나로 감정조절이 가능해졌다

 

  쓰레기매립장이 넘쳐나고 썩어도 썩지 않는 대용량의 분노가 필요했다

 

  장례식장이 장례예식장으로 바뀐 이후로

  죽음에 대해 우아하게 말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싱크 홀 속으로 엄마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희망이라는 벌떼가 자기전복을 위해 날아들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날들이 도래할 것이다

 

월간 『현대시』 2016년 5월호 발표

 

 


 

강해림 시인

대구에서 출생. 1991년 《현대시》와 《민족과문학》읋 등단. 시집으로 『구름사원』과 『환한 폐가』, 『그냥 한번 불러보는』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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