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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은 시인 / 고흐
1
흰 시간위로 백스페이스 두드린다 검은선, 눈만 깜빡이고 열여덟 어느날 그와 마주앉아 끊어진 이야기, 그 사이로 초록 압생트 병이 기운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난 초록색 잠에 빠져 든다 벽지에 묻은 노란 얼룩 한 점, 내 눈꼬리를 잡는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난 둥근 손잡이에 잠을 묻힌다
2
공간에 갇힌 초록 바람, 눈가를 맴돈다 벽시계 졸고 있고 3을 가리키던 바늘 내 눈동자를 찌른다 갈증 난 주전자, 비명을 지른다 초록바람이 돌고 잘라진 내 귀 속으로 시계울음이 들어와 갇혀버린 시간을 끓인다 초록색 압생트 한 모금에 멈춰진 시계바늘을 녹인다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벽시계가 비린 살맛을 끌고 간다 바닥에 내려앉은 초록의 심장, 새벽세시에 멈춘걸
3
혈관을 타고 흐르는 초록, 소리를 삼킨다. 숨과 숨 사이를 지나 심장을 두드린다 말없는 심장은 소리를 내고 초록에 묻은 노란 숨들이 녹아 압생트에 갇힌다 초록 바람이 노란햇살 한모금을 유리병에 담는다 초록창 사이로 연두가 피어나고 열여덟 처녀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난 여전히 초록 압생트에 갇힌걸
4
초록에 물든 발, 날아간 열여덟 순정, 휘청이는 시간앞에 멎는다 압생트 목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 들려오고 열여덟 북향 창 노란색 눈물이 방 모서리에 고인다 밤마다 나를 끌어당기는 초록 창으로 쏟아질 햇살, 시간을 빗겨 간다 잃어버린 열여덟, 아를*의 노란방 침대에 가득하다 코끝에 묻은 햇살 한 모금으로 노란강은 흐른다 창 바람은 가끔씩 내 입술에 시간의 껍질을 실어다 나르고, 나비들은 라일락 냄새를 유기遺棄한다
5
탁자 위 압생트, 첫 번째 잔으로 창을 채색하고 그를 기다린다 채색된 침묵으로 압생트의 두 번째 잔이 채워진다 말을 건넬수록 숨을 멈추는 압생트, 그 세 번째 잔을 채우고 열여덟 북향창이 나비를 따라 갔는지 묻는다 노란 벽을 타고 그의 눈에 초록 시간이 젖어들 때 햇살 한 점 내려앉아 내 가슴으로 초록바람이 스미고 네 번째 압생트 잔, 채워진다 압생트에 갇힌 초록바람 소리, 청아하고 그 영혼 노랑으로 잠기고 압생트 여섯 번째 잔이 놓이고
*아를: 고흐가 사랑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로 고흐그림의 배경이 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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