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선우 시인 / 무덤이 아기들을 기른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3.

김선우 시인 / 무덤이 아기들을 기른다

 

 

버즘나무 이파리 서쪽으로 눕던 길, 그 길 끝에 놓여  있던 비둘기의 주검,

선명한 자동차 바퀴자국.

새의 내장도 무겁구나,

파리해진 잎사귀의 반쪽을 가리며

오래도록 주검을 맴돌던 슬픈 애인이 펄럭였다

술잔 속에서 끊임없이 피묻은 깃털이 올라오던, 그날 애인을 안고 속삭였던가

갓 태어난 아기들의 뱃속을 생각해봐

작은 정원 같은, 붉은 다알리아 콩닥콩닥 김을 뿜고 삐비풀이 연초록 길을 만들지

노랑 주홍빛 채송화, 토란잎 위에서 장난치는 피톨들, 붉고 흰 물방울.

물방울은 동그란 무덤이야 우린 누구나 무덤의 집이라구 따스한,

내 가슴에 떡잎처럼 매달려 우는 어린 애인, 덜 여문 내 꽃자리로 사르륵 통증이 지나갔고

나는 무덤을 열어 젖꼭지를 물려주었지만

어떻게 울음을 그쳤는지 모른다

그날, 내 애인은 동구 밖에 비둘기를 묻어주고 내 등에 업혀  돌아오던

다섯 살배기 동생이 되어 내게 말했다

고마워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어줄게.

향긋한 냄새가 그애의 정원에서 풍겨나와 핑그르르,

내 무덤에서 정말로 젖이 돈 것만 같았다

 

 


 

김선우(金宣佑) 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