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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선희 시인 / 바그다드 카페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3.

장선희 시인 / 바그다드 카페

 

 

가슴 속 지도를 펼쳐놓고, 먼 항해를 떠나듯 설레고 있어

회벽에 걸린 시계, 새처럼 날 보고 있어

그 새, 피아노의 떨림판인 양 발자국이 지난 뒤에도 한참을 울지

 

면도날이 지나갔어,

바람에게 손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야, 커피머쉰에선 검은 강이 쏟아졌다는 건 정말이야, 주말이면 불꽃 문양의 팔뚝들이 신기루 따라 지나갔어  

 

객(客)들은 목적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지, 아니, 돌아오는 게 여행의 목적인 사람들도 있지 사막엔 붉은 장미가 필요없어, 검은 페드라모자도 필요없어

 

낙타 속눈썹을 한 무희가 마룻바닥에서 수피춤을 추었어 누가 저 넘쳐흐르는 소리를 잠가줘, 열여섯 량 모래폭풍도 잠가줘

 

사막은 매직,

혼자서도 춤을 출 줄 알아

 

회오리아이스크림 비행기가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여행가방은 구석에서 졸다 넘어졌지 가방주인은 뭐가 들었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아, 마침내 맨발로 사막을 횡단할 결심을 했지

 

기면(嗜眠)의 음악이 흘러, 낡은 전투화를 매만지던 늙은 손들이 하나 둘 흘러간 뒤였어, 오렌지색 나무창문이 모래구릉을 야금야금 뜯어 먹던 늦여름, 모래바람을 주문했지

구름과 총성이 주술처럼 내달리는, 열여섯 량 모래폭풍이 지나간 뒤였어

 

바람의 굴곡을 따라 달라지는 꿈의 방향들, 자오선 긋듯 우뚝 일어서는 불꽃문양의 팔뚝들, 익숙한 거리 익숙한 얼굴을 지나치면 모서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얼굴들. 마침내 모래바람 속으로 떠난 여행가방, 주인의 거친 손아귀에 덥석, 낚아채이지

 

 


 

장선희 시인

1964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2년 제1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제5회 월명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