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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시인 / 당신의 진짜 얼굴
당신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습니까? 수백만 송이송이 촛불들이 당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 달라고 외칩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어느 것이 당신의 진짜 얼굴인지조차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보여줄 얼굴이 없습니다. 당신은 한 번도 진실해본 적이 없어 진짜가 무엇인지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밖에 몰라 자신에게 말을 걸 줄도,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당신은 거울 앞에 앉아 당신의 얼굴에 타인의 잔영이 조금이라도 비치기만 해도 참지를 못합니다. 당신의 눈은 이미 어떠한 배려도 잃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당신의 심장 속에서 눈먼 지 오래, 그 눈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은 누군가의 조그만 함성, 항의에도 화들짝 놀라 그들의 목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그 힘에 짙은 권력의 야광을 한 겹 더 입힙니다. 우리는 한 번도 그런 권력을 가진 적도 탐한 적도 없어 그저 우리 얼굴에 생기는 역경의 주름 한 줄, 환희의 보조개 하나까지에도 솔직하게 반응하고 감수하며 우리만의 얼굴을 지키지만, 당신은 당신 얼굴의 부귀만을 위해 당신이 저지른 죄와 악덕으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온갖 종의 늑대들을 불러 모아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들의 그 슬픈 얼굴까지 빼앗고, 짓밟고, 유린하고, 약탈해 갑니다. 마치 우리에 갇혀 있는 사자는 안전하다는 걸 알기에 그 사자에겐 마음 놓고 돌을 던져도 된다는 듯 당신은 당신의 섬섬옥수 같은 미소 뒤에 사악한 욕망과 그보다 더 사악한 황금을 줄줄이 쌓아놓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와 살도 없고, 죽지도 썩지도 않는 유령의 가면을 씌웁니다. 수백만 송이송이 촛불이 흘리는 피눈물 뒤에서 믿을 수 없이 섬뜩하게 웃고 있는 그 유령의 얼굴이 당신의 진짜 얼굴입니까?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창문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 당신의 진짜 얼굴입니까? 당신의 진짜 얼굴이 보고 싶어 오늘도 우리는 수백만 송이송이 촛불에 불을 붙입니다. 그 꿈의 노래가 그 희망, 그 정의의 노래가 대부분 아주 슬프게, 돌이킬 수 없이 아프게 끝나버린다 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에, 길 잃은 양도 목동도 아닌 인간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당신의 칠흑 같은 밤 앞에 서서 계속해서 인간의 심장을, 세상의 창을 두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진짜 얼굴을 지닌 진짜 인간이어야 하기에…
월간 『시와 표현』 2017년 2월호 발표
김상미 시인 / 장미의 끝
이루어지지 않은 내 연애 사이로 장미꽃이 진다 세상에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더니 장미꽃이 진다
나는 무작정 아무 차나 타고 내달린다 한여름 땡볕에 산 채로 불타던 장미꽃 그 새빨간 단말마 사이로 한없이 무정한 사람들의 뒷모습이 자동차 바퀴처럼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풍경들을 지나 더더 무심한 곳으로 더더 서러운 곳으로
뒤돌아보면 장미의 나날들이란 얼마나 왜소한가! 장미는 장미라서 장미다…로 시작되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처럼 얼마나 건조한가!
아무리 향 좋은 소스를 치고 양념을 섞어도 가슴속에선 肺 없는 쓴웃음만 날리고 자꾸만 예상을 빗나가는 날씨처럼 변덕스런 집착은 고단하게 차창 밖만 바라보고 바라보고
돌이켜보면 장미의 나날들이란 얼마나 그릇된 관습인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지고 납작해질 대로 납작해진 내 심장만 무자비하게 개봉당한 채
나는 바라본다, 장미의 끝!
종로에서도 신도림역에서도 명동에서도 신촌에서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로맨스 무리들에 짓밟혀 놀란 나방 떼처럼 뿔뿔이 흩어지는 새빨간 꽃잎들!
어딜 가도 장미는 이미 다 지고 없는데
계간 『시산맥』 2016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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