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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민경 시인 / 기념일이 간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3.

권민경 시인 / 기념일이 간다

 

 

  팔 벌린 사람들

  지나쳐

  돌계단이 있는 집으로

 

  고마워요 문득문득

  불을 밝혀주어서

  드문드문

 

  눈처럼

  깜빡이며

  서있던 사람들

  깜깜한 몸

  마음속 애인들

 

  나는 오랫동안 연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서면

  손가락이 구부러집니다

  레고 인형의 손처럼

  항상 맞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고리를 갖고 싶어서 나는 자주 오른손과 왼손을

  겹쳤습니다

 

  생일잔치 전날엔 색종이로 목걸이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개의 고리 안에서 비로소

  주인공이 되는 목

  목은 자꾸 길어지고

  길어지고 창문이 생기고

  내다보면

  구름이 날고

  별이 돋고

  천구가 여러 번 바뀌는 동안

  겨우 도달했습니다 마주볼 수 있는 얼굴

 

  끌고 온 목걸이

  여러 번 휘감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사람

  달무리 같은 눈동자를 떠올립니다

 

  밤을 건너 나는

  돌계단이 있는 집으로

  연인의 집으로

  내가 애인이 된 것을 축하받는 자리로

  걸어갑니다

 

  당신은 스팽클을 잔뜩 붙인 종이 왕관을 내게 씌어주고

 

계간 『시산맥』 2015년 여름호 발표

 

 


 

권민경 시인

1982년 서울에서 출생.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