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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시인 / 의자는 생각한다
의자는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수평선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무릎을 짚고 일어설 것처럼 구름이 피어나고 있다
구름이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 나간다
다정한 연인처럼 창에 비친 서로를 바라보며 낡아가고 있다
삶의 절반 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그 기억을 허무는 데 바쳐진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친 생일을 뒤늦게 깨닫고는 다음해의 달력을 뒤적거린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고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라고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의자 위에 물음표 하나가 앉아 있다
구름의 초대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5년 겨울호 발표
신철규 시인 / 식탁의 기도
세상에서 가장 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기도하는 두 손에서 솟아나는 또 다른 두 손
높은 성에 사는 귀족들은 왜 그렇게 긴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까 기도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침을 삼켰을까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저녁의 공기를 뒤흔들고 지나간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고 시소의 한쪽 끝에 앉아 반대편 의자 위에 걸터앉은 붉은 해를 바라보던 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가 밥을 먹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 이 세계의 울음과 단식은 사라진다 내가 고개를 숙일 때 당신은 사막이었다가 사막의 선인장이었다가 사막의 밤을 횡단하는 기구(氣球)였다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눈사람이었다가
우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책을 매일 한 권씩 버렸다 마지막으로 텅 빈 책장마저 썩어 무너지면 우리는 꿈속에서 서로의 손가락을 가위로 잘랐다
연한 입이 딱딱한 부리가 될 때까지 우리는 씹고 또 씹었다 서로 조금만 뒤로 물러난다면 우리는 등을 맞대고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배가 꺼지면 우리는 또 식탁에 지도를 펴놓고 이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뜨거운 밀랍을 귀에 붓고 딱딱한 기도를 한다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손가락을 뚝뚝 분지르며
계간 『창작과 비평』 2015년 여름호 발표
신철규 시인 / 손 안의 새
햇살이 먼지 낀 창을 통과해 내려온다 먼지 한 올 묻지 않은 흰 빛이다
흐린 창 너머 멀리, 식은 구름이 흐르고 있다
나는 빛기둥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룻바닥에는 빛의 수조가 있다 그 속에 발을 넣으니 발등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두 손바닥을 펼쳐 빛기둥 안에 넣는다 새 한 마리가 손바닥 위에 앉아 있다
새는 날개를 접고 최대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과 씨 같은 눈알은 미동도 하지 않고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처럼 부리로 깃을 다듬는다
나는 두 손바닥을 모아 새를 조심스럽게 그러쥔다 새의 심장 박동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른다 나는 손가락 틈으로 새를 바라본다
새가 조금씩 날개를 퍼덕거린다 발톱으로 내 손바닥을 콱 찍어 누른다 손바닥을 힘주어 포갰다가 펼치니 새는 없다 바닥에는 피투성이 깃털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헐벗은 나무처럼 오래 서 있었다 식은 발등에서 검은 그림자가 피어올라 주위를 덮기 시작했다 그을린 창문만 남았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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