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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종규 시인 / 만월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5.

송종규 시인 / 만월

 

 

  두꺼운 책갈피에 백일홍 꽃잎을 끼워 넣으면서

  그 여름이 지나갔다

 

  무대는 침묵으로 가득하다

  서로의 시선을 비켜서 의자가 등을 보이며 돌아앉아 있고

  어떤 대사도 없이 한 사람이 올라가고 한 사람이 내려오고

  여러 사람이 무심한 듯 시소 위에 올라앉아 있다

  바람과 구름의 입술이 스쳐간 자작나무 잎사귀에는

  비비새가 쪼아대던 새벽의 공기가 묻어 있고

  무대는 의자와 시소와 침묵으로 꽉 차 있다

 

  나는 막 이불을 펼치려던 참이었고, 나는 막 창문을 잠그려던 참이었는데

  첫눈 같은 이마를 반짝이며 가을이 오고 있었다

 

  물방울들이 스크럼을 짜고 호수의 표면을 뒤덮는 저녁

 

  우레와 같은 커튼콜에 보름달이 불려나오고, 수면이 차오르고,

 

  백일홍 꽃물이 책갈피 속에 환하게 백열등 불을 켠다

 

월간 『시와 표현』 2017년 2월호 발표

 

 


 

송종규 시인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둥지, 1990), 『고요한 입술』(민음사, 1997),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시와반시사, 2003), 『녹슨 방』(민음사, 2006),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 2015)이 있음. 2005년 대구문학상 과 2011년 제31회 대구시 문화상(문학부문), 2013년 제3회 웹진『시인광장』 시작품상, 2015년 제13회 애지문학상, 2017년 제10회 시인광장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