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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 / 불새
비난은 폭설보다 심해 마음의 가지 적설을 못 견딘 나뭇가지처럼 비난에 사정없이 뚝뚝 부러져 고로쇠나무 수액 같은 피 철철 흘린다. 처형의 광장에 세워진 듯 가혹한 비난도 망나니 칼처럼 휘 번뜩인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과 독설은 나를 짓밟고 가는 청동 발걸음인가. 비난에 난도질 된 내 하늘이 너덜거린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가혹한 혓바닥 살기 위해 배수진을 친다지만 사력을 다한들 가도 가도 비난의 목소리 뿐 들불처럼 일어나는 저 비난의 기세를 보아라. 상한 마음을 물어뜯는 비난의 치명적 어금니 비난이란 짐승만큼 사나운 짐승이 어디 있느냐. 수천 근 살 뜯겨 철철 피 흐르는 가슴이 아니냐. 아무리 높은 목책도 산맥도 수 천 수만의 강도 건너 밤낮없이 달려오는 것이 비난이 아닌가. 지금껏 내가 세운 명분도 방파제가 될 수 없다. 쓰나미처럼 몰아닥치는 비난이여 비난의 칼날을 피해 검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수는 없다. 저 자욱한 비난, 비난, 비난의 차가운 소낙비 무릎을 사정없이 걷어차 오는 비난의 구둣발이여 고꾸라지는 나를 걷어 차올리는 비난의 완력이여. 도가 지나친 비난이어도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면 비난은 나를 담금질 하는 기름과 같은 것이나 이미 나의 숨통을 끊으려 필사적으로 조여 오는 아나콘다 같은 비난이여. 너를 벗어나 내가 망명을 해 갈 나라는 어디 있는가. 너를 세 번 부정하도록 새벽 닭 울어주는 나라는 어디 있는가. 비난의 고삐를 풀기 위해 길길이 날 뛰는 청춘이여 하나 언젠가 비난을 벗어날 날은 샛강처럼 안개 자욱이 피어 올리면서 먼발치에서 출렁이며 흘러오지 않으랴. 이미 비난의 독성으로 내 입술은 검게 변했고 정신은 피폐했으나 비난의 난간을 지나 언젠가는 아카시아 향기 휘날리고 호랑가시나무 기웃거리는 꿈의 베란다로 한 발은 반드시 내디딜 수는 있을 테니 오늘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이 푸른 내일로 밀어가는 힘이니 비난이여 때론 자신을 향해 참회로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다. 수천 수 만 개의 화살처럼 비난이여, 나에게 집중되라, 쏟아지라. 온몸에 비난의 화살이 꽂혀 멸하여도 좋으리라. 오늘 비록 내 끝없이 절뚝거리지만 비난으로 불구가 된 몸으로 걸어도 나는 내가 가야할 길 위에서 필연이든 우연이든 수많은 희망을 만나리라 믿는다. 비난은 나를 무엇에도 휘지 않는 정신으로 결빙의 꼭대기에 창살처럼 뾰족하게 세운다. 죽어 천년 살아 천년 가는 주목의 푸른 정신으로 곧추세운다. 비난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차라리 불가사의 한 일이다. 비난의 세월이란 사랑이 숙성되는 시간이다. 비난 속에서도 힘이 되는 그리운 노래는 있다. 나 끝내 비난의 불길을 피하지 못해 전신이 비난의 불길에 휩싸이더라도 나 어둠이나 비난을 활활 태우며 천지를 밝히며 치솟아 오르는 불새 한 마리 되리라. 태양의 새 삼족오나 극락정토의 가릉빈가가 아니라 불멸을 향해 솟구치는 불사조가 아니라 어두운 판을 뒤집어 빛의 광야로 이끄는 절명하는 불새의 길고 긴 울음이 되리라. 단명의 새나 꿈을 점등하고 사라지는 순간의 불새로 천지를 잠깐 울고 가리라. 지층처럼 캄캄한 날에 시조새 같은 울음을 새겨 다시 천년의 물꼬를 터고 사라지리라. 우주 끝까지 뒤흔드는 우레 같은 천상의 울음 울고 가리. 내 몸은 이미 아득한 허공으로 불새가 된 영혼 폭죽처럼 쏘아 올리니
계간 『문학실현』 2017년 봄호 발표
김왕노 시인 / 눈이 잘 보이는 저녁
눈이 잘 보이는 저녁에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네. 눈이 잘 보이는 저녁에는 담 위에 하얗게 핀 박꽃을 보러 철거덕거리는 기차바퀴소리 위에 내 저녁을 얹고 고향으로 목마른 짐승처럼 가고 싶은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를 읽으면서 가난한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 밤에 눈이 푹푹 내릴까 생각하네. 눈이 잘 보이는 이런 저녁에는 파르티잔 넋이 깨어나는 뱀사골로 가 지리산 가득 피어나는 별을 헤어보고 싶은데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가 없다. 를 읽으면서 내게는 누가 오나 기다려 본다. 누가 오면 나도 깊은 산골에 마가리에 살자 속삭이고 싶은데 눈이 잘 보이는 저녁 나에게 나타샤도 휜 당나귀도 없어서 응아 응아 울 일도 없고 밝은 눈 속으로 슬픈 별만 뚝뚝 지네
계간 『시와 문화』 2017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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