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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차애 시인 / 비밀의 속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6.

안차애 시인 / 비밀의 속도

 

 

  내 비밀의 비밀인 당신만 아직 모르고 있죠

 

  비밀 더하기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예요

  사랑 더하기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듯이

  비밀을 비밀이게 하는 공기의 무늬와 결

  힘줄의 뻗침이나 기다림의 심호흡만 가만히 수런거릴 뿐,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난쟁이 오스카가 군악대의 연주 사이로 양철북 소리를 밀어 넣듯

  고요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밀어 넣어 고요의 중심이 될 뿐

  비밀은 아니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숨긴 것이 없는데 비밀이 늘어난 것은 비밀의 속도 때문일까요?

  가로지르는 속도 때문에 좌표 값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당신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죠

  비밀은 아니예요

 

  퍼즐의 테두리처럼,

  좀처럼 당신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비밀의 비밀이예요

 

  고양이는 고양이로 있어요,

  숫양은 숫양으로 있구요,

  나는 꼬리 아홉 개 쯤 떼버린 여자로 있어요.

  그림자는 프로필이 없는 분자식으로 떠돌구요

 

  11월의 안개 속 고요가 수런거리는 강가에

  도착할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모든 일이

  당신을 가로질러 갈 거예요

 

  내 비밀의 비밀인 당신만

  모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죠

 

격월간 『시사사』 2016년 1~2월호 발표

 

 


 

안차애 시인

1960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불꽃나무 한 그루』(문학아카데미, 2003)와 『치명적 그늘』(문학세계사, 2014)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