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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민숙 시인 / 시마 (詩魔) 8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8.

이민숙 시인 / 시마 (詩魔) 8

-영원으로 데려갈 것처럼

 

 

누군가 내 온몸에

햇볕을 퍼붓는다

바람을 퍼 나른다

천상으로부터 번개 천둥친다

수선화 꽃잎을 달의 술잔에 담근 채로 피워 올린다

 

지금, 계곡에선

우당탕거리며 물뿌리들이 요동친다

먼먼 무릉도원으로부터 날아온 은빛 새는

여자의 입술을, 현묘한 가야금으로 활짝 피어나게 한다

 

새의 부리가 영롱하게

허공을 쪼아댈 때마다

내 열두 현의 전 생애가 포세이돈처럼 바다를 퍼올린다

지나가던 샘물 덩달아 출렁거리며 목마른 사막을 적신다

그 사막들은 하룻날 가야금 천만 음표를 부리에 물고

버려두었던 연애를 찾아 떠난다

별무리마저

밤의 산골에 내려와

작은 연못에서 고요히 새벽을 기다리던 도롱뇽 알을 깨운다

 

영원으로 데려갈 것처럼

영원으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히말라야의 설원에서 거대하게 빛나던 희디흰 서사시가

그대가 뿌려준 잉크 한 방울로부터 태어난다

그 이야기의 낯선 새 울음에 귀 기울이던 새벽이

달빛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며 달콤하게 입술을 옴지락거린다

 

샛별이라는 어부가 사십오억 년을 저어 당도한 섬

핏빛으로 피어나는 동백의 바다, 태초의 깊은 곳에는

천 년 전에 버려진 산호초 닮은 가야금이 홀로

스스로의 몸을 연주하고 있는데

 

영원으로 데려갈 것처럼, 저 새 한 마리

별빛 날개를 퍼득이며 퍼득이며

퍼득이며......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발표

 

 


 

이민숙 시인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등이 있음. 여수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문학아카데미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