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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애숙 시인 / 갑골문 편지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8.

권애숙 시인 / 갑골문 편지

 

 

그 날, 당신에게 딸려 보낸 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곳은 너무 깊고 고요해 어디로 향한 발목이든 피고 질 수 없다는 소문을 문득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긴 자주 안개가 서로를 숨기는 가을입니다. 묵은 길들이 지워지고 새 길이 생기는 중인지 가끔 비밀스럽게 지축이 흔들립니다.

 

이젠 가믈한 당신의 체취처럼 그쪽으로 간 사람의 붉은 쪽도 흐릿해지고 있을까요. 안개의 뒤편으로 익은 감들이 사라지는 아침, 누가 읍내로 떠나가는 차의 꽁무니를 따라 달려갑니다. 부디 당신이 다시 오시길, 없는 사람을 업고 돌아와 수 없이 균열이 간 빈집을 서늘하게 칠해주시길,

 

비틀거리는 허깨비들이 수위가 높아진 강물 위로 섶다리 하나 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울음의 안이며 밖인 당신, 그 곁에 어떤 천년을 기억하는 사람이 머물러 있긴 한지요. 두근거리는 양각의 시간들을 새기며, 서러운 음각의 이름들을 새기며, 우리의 시월이 차갑게 앓고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발표

 

 


 

권애숙 시인

경북 선산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5년  《현대시》 시 등단. 시집으로 『흔적극장』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