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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필 시인 / 지저귀는 기계들에게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1.

이필 시인 / 지저귀는 기계들에게

 

 

이제 새는 흉내 낼 수 없다

비 그친 지붕 위로 날아오르며 지저귄다 해도

그것은 외로운 나무들의 짓인지도 몰라

오래전 나뭇잎의 이마가 떨어져 제 언어의 주인에게 돌아간 것​처럼

어둠의 손잡이를 돌리며

새 부리에 다시 태엽을 감는 나무들

 

밤의 공중 기계들이 서서히 멈추고 있다

새의 울음으로

저녁의 뚫린 구멍을 붉게 메운다 새가 멈추고

더는 날지 못하리

 

울음을 드러내면

울음 속에 더 작은 울음의 부속과 장치가 있다

 

어쩌면 하늘의 다락방에는

단안경(單眼鏡)을 쓴 채 인상 찌푸리는

신이 있는지도 몰라

천사의 날개에 박힌 나사못을 조이며 중얼거릴지도 몰라

이렇게 멜로디 장치를 조여 놓으면

죽은 새들이 돌아올지도 몰라

 

신은 손에서 드라이버를 거두고 공중의 테를 덮는다

 

계간 『다층』 2018년 가을호 발표

 

 


 

이필 시인

2016년 월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