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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의섭 시인 / 닮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1.

윤의섭 시인 / 닮

 

 

  어느 화랑에 걸린 우울한 초상을 닮은 달

  지는 햇살에 눈을 뜨고 찡그린 오래된 사진의 표정을 닮은 달

 

  몇 년 전에 똑같은 얘기를 나눈 것 같았는데

  이 카페는 오늘 처음 와본 곳이다

  마주보고 앉았지만 마주대한 건 내심이었다

 

  창밖으로 문득 내 뒷모습이 지나간 듯 했다

 

  우리는 지나온 날의 모든 순간을 닮아 있다고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 했다

  과연 공포를 닮았다는 건가

  테이블마다 놓인 냅킨 한결같은 메뉴 모태가 같은 머그컵 모두

  비슷하길 마다하지 않는데 다르다면 처음부터 달랐다면

 

  이란성 달이었을 것이다 서로 따로 바라보고 있는 착각의 달

 

  아이스크림엔 소금도 들어간대요 더 달라고

  정말 달아져요 정반대 맛인데

  단맛을 닮은 거겠죠 완벽히 달라야 닮아갈 게 더 많은 거니까

 

  커피에 비친 두 개의 달을 한 모금씩 삼킨다

  조금 더 닮아간다

 

월간 『현대시학』 2015년 8월호 발표

 

 


 

윤의섭 시인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지성사, 2005) , 『마계』(민음사, 2010),  『묵시록』(민음사, 20106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대전대학교 교수이며〈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