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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금숙 시인 / 새너토리엄(sanatorium)*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

나금숙 시인 / 새너토리엄(sanatorium)*

 

 

외딴 곳에 가서 잠시 쉬고 오자

지난 주에도 몸을 던지려 했다고?

오락가락하는 기억들과 손가락의 통증과

복화술의 구름 너머로

 

긴 복도 끝에서 우리들

공항을 내려다보다가

17층을 올려다보다가

더 큰 산 위로 올라와봤지

여기서 집이 바로 코앞이래

저 심연을 향해

비밀을 털어놓으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대

 

경계성 인격장애

벽지의 포도를 뜯어 먹다가

밤에 전구를 고치다가

새벽에는 그림을 그리는 너를 위해

 

고양이 만져도 돼?

방울방울 공기에게 묻다

 

*결핵과 각종 신경병을 치료하는 요양소. 한적한 곳에서 맑은 공기, 쾌적한 햇빛 등을 이용하여 치료함.

 

계간 『문학과 창작』 2019년 봄호 발표

 

 


 

 

나금숙 시인 / 도취에 대하여

 

 

영혼을 앗아간다는 빵,

경배자를 찾는 신의 품에서 가져 온

안식 한 웅큼으로 반죽합니다

아침마다 듣는 새소리는 신탁입니다

많은 이에게 자유를 주려는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은

첫 타종에서부터 금이 갔다지요

몇번 타종에서 금이 가버린 나도

먼길을 떠나  * * 의 종을 보러 갔지요

내가 가면 다른 도시로 흘러가버리는 종소리를 따라갔어요

죽은 분화구 앞에서

노을이 불꽃을 피우는 곳

하염없는 가능성을 따라가다가

성전 기둥같은 고목 아래 에서 잠을 청했어요

이른 아침이면

배고픈 짐승이나 밤의 새들이 다녀갔지요

먹이가 되다 만 노란 살구 열매들이 향내가 자욱해요

심심한 침묵 뒤에

빛을 뿜고 싶어 안달하는 내 안의 발광체들에게

쉿!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모든 나열과 정렬과 수렴과 조합이

뭉게구름처럼 겹쳐

누군가는 이 하지 축제에 오면

존재에 구멍이 뚫려요

 

계간 『사람의 문학』 2018년 봄호 발표

 

 


 

나금숙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나무 아래로』(새로운사람들, 2003)과 『레일라 바래다주기』(시산맥사, 2010)가 있음. 서울시 공무원 역임.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논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