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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재남 시인 /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

강재남 시인 /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

 

 

우는 법을 잘못 배웠구나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근심이고 환절기는 한꺼번에 와서 낯설었다 오후를 지나는 구름이 낡은 꽃등에 앉는다 매일 같은 말을 하는 그는 옹색한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서다

 

눈시울 붉히는 꽃은 비극을 좀 아는 눈치다 비통한 주름이 미간에 잡힌다 구름의 걸음을 가늠하는 것만큼 알 수 없는 꽃의 속내,

 

연한 심장을 가진 꽃은 병들기 좋은 체질을 가졌다 그러므로 생의 어느 간절함에서 얼굴 하나 버리면 다음 생에도 붉을 것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계절에는 풍경이 먼저 쏟아졌다

헐거운 얼굴이 간단없이 헐린다

 

낭만을 허비한 구름은 말귀가 어둡다 색을 다한 그가 급하게 손을 내민다 구름이 무덤으로 눕기 전에 꽃은 더 간절해져야 함으로

 

울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친절한 인사를 한다 피우다 만 꽃이 더러 마르고, 목을 늘인 꽃대가 꽃색을 잃었다 바람과 내통하는 꽃의 비밀을 읽는다

 

웃을 때 생기는 습관이야, 눈시울 붉히는 꽃이 말했다 그는 눈물에 능하다 달콤한 거짓이 참말을 밀치고 저만치 피어있다 눈가가 함부로 붉었다

 

바람이 간지러워 꽃잎을 뜯었을 뿐이야

 

웃음이 무성한 꽃밭은 변명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지나가던 구름이 바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0월호 발표

 

 


 

강재남 시인

경남 통영에서 출생. 2010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서정시학, 2017)가 있음. 2017년 한국문화예술유망작가창작지원금 수혜. 2017년 제6회 한국동서문학작품상 수상. 현재 경남일보 <강재남의 포엠산책> 연재. 통영청소년문학아카데미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