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형만 시인 / 도미의 노래*
아내여 세상에 둘도 없는 어진 아내여
나에게 보이는 건 오로지 벌겋게 달아오른 서녘 바다 인두로 지져진 나의 두 눈 눈썹들은 물새가 되어 벌겋게 불 붙은 나랠 파닥이며 꺼이꺼이 통곡하다 자즈러지는 서녘 바다 아내여 나에게 닿는 건 오로지 이글이글 달아오른 바닷바람 사랑 하나 빗장 질러 간수하지 못해서 살점마저 찢겨 발린 나의 육신 떨어져 나간 살점은 갈대로 피어나고 갈대밭에서 나뒹구는 물귀신들의 거친 숨소리 아내여 으스스 몸 떨리는 밤이 오면 그대의 다사로운 품안 깊이 폭포로 파묻히고자운
아내여 세상에 둘도 없는 어진 아내여 어진 아내여
* 도미(都彌)와 그의 아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미인이며 절개가 곧은도미의 아내를 음탕한 개루왕(蓋累王)이 범하려 하나 실패하고, 도미의 두 눈은 뽑히어 추방당한다. 도미의 아내는 끝내 궁중 탈출에 성공하여 남편을 만나 고구려로 망명한다.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 만남
모두들 숲으로 떠나가고 나는 혼자다 모두들 들판으로 달아나고 나는 혼자다 모두들 지하도로 숨어 들고 나는 혼자다 오로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나는 그러나 만나고 있다 만나고 있다
―벼락으로 번득이는 두려움이여.
萍 문학세계사, 1988
|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인찬 시인 / 생매장 (0) | 2020.01.04 |
|---|---|
| 유안진 시인 / 고란초 외 1편 (0) | 2020.01.04 |
| 강인한 시인 / 그 해 가을의 일기 외 1편 (0) | 2020.01.04 |
| 박노해 시인 / 노동의 새벽 외 1편 (0) | 2020.01.04 |
| 구석본 시인 / 새, 이름에는 날개가 없다 (0) | 202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