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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형만 시인 / 도미의 노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4.

허형만 시인 / 도미의 노래*

 

 

아내여 세상에 둘도 없는 어진 아내여

 

나에게 보이는 건 오로지 벌겋게 달아오른 서녘 바다 인두로 지져진 나의  두 눈 눈썹들은 물새가 되어  벌겋게 불  붙은 나랠  파닥이며 꺼이꺼이  통곡하다 자즈러지는 서녘 바다 아내여 나에게 닿는 건 오로지 이글이글 달아오른 바닷바람 사랑 하나 빗장 질러 간수하지 못해서 살점마저 찢겨 발린 나의 육신 떨어져 나간 살점은 갈대로 피어나고 갈대밭에서 나뒹구는 물귀신들의 거친 숨소리  아내여 으스스 몸 떨리는 밤이 오면 그대의 다사로운 품안 깊이 폭포로 파묻히고자운

 

아내여 세상에 둘도 없는 어진 아내여 어진 아내여

 

* 도미(都彌)와 그의  아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미인이며 절개가 곧은도미의 아내를 음탕한 개루왕(蓋累王)이 범하려  하나 실패하고, 도미의 두 눈은 뽑히어 추방당한다. 도미의 아내는 끝내 궁중 탈출에 성공하여 남편을 만나 고구려로 망명한다.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 만남

 

 

모두들 숲으로 떠나가고

나는 혼자다

모두들 들판으로 달아나고

나는 혼자다

모두들 지하도로 숨어 들고

나는 혼자다

오로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나는

그러나 만나고 있다

만나고 있다

 

―벼락으로 번득이는 두려움이여.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중앙대 국문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무기가 없다』 등과 시선집으로 『새벽』, 활판시선집 『그늘』 등과 평론집으로 『시와 역사 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