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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 / 생매장
(내가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면 나는 공동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이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영혼의 인도자나 땅의 요정 같은 것이 실존하지 않는다면
등장인물은 없습니다 등장귀신은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놀러갔더니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를 멈추면 거기서 끝입니다
영어의 관습적 표현으로 까닭 없이 오싹할 때를 두고 누군가가 너의 무덤 위를 걷고 있다고 한다던데
그저 평온하군요
(내가 공동묘지에 묻혀 있어도 나는 공동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비 내리는 날의 흙냄새, 발이 젖는 느낌, 서서히 온도를 잃어가는 손과 차갑게 들끓는 기분 같은 것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저는 그걸 압니다
지금은 비도 오지 않지만, 사실은 문이 닫혀 있어서 비가 정말 오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비가 내리고, 오래된 나무는 벼락도 맞고, 그렇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긴장이 다 풀려버릴 텐데 공동묘지에서 깜짝 놀라기란 참 어렵군요
그러니까 이쯤에서 문을 열고 나가겠습니다
등장귀신은 아직 등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간 『포지션』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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