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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 시인 / 빨강의 자서
정열을 단지 빨강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퍼 카페에 앉아 수정하네
지중해 정수리에 집중하는 태양은 빨강을 생산한다 얼굴 비비던 연인들 올리브나무 사이로 양의 부드러움 만지듯 육체를 더듬고 대부분 여섯 번째 시간 안으로 낮잠에 드는 모로코인들은 태양에게 침묵을 배운다 빵처럼 부푸는 오후 2시의 탕헤르
소리 없이 달궈진다, 영혼들 정염에 그을린 눈빛은 동굴처럼 깊다 지그시 어금니 깨무는 이슬람 사원의 아잔
물빛에 취한 몰타 섬의 화가가 붓질을 한다 푸른 염료를 찍어도 붉게 채색되는 춤추는 정열의 나부 춤의 언어는 꼭두서니 빛, 사막의 바람에 탈색되는 붉은 엉덩이의 격렬함으로
물빛 가장자리 차곡차곡 쌓인 돌계단 무심한 고양이도 물빛 바깥쪽에 자리 잡는다 타오르는 그늘을 걸친 사람들
짙푸른 지중해 물빛을 스크래치하면 정열이라는 빨강이 숨어 있을 거라 고쳐 쓰네
계간 『예술가』 2018년 가을호 발표
성향숙 시인 / 장님거미
혼자 산책하는 느린 오후라고 하자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거실로 스며든 여자라고 하자
궤적도 남기지 않는 깔끔한 뒷모습이라고 하자
등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일요일 또는 사색이 고인다고 하자
깊은 사색은 선홍빛 검정이라고 하자
낙엽더미 속에서 이파리하나 집어 들고 훌쩍거리는 구원을 생각한다고 하자
절룩거리는 시계바늘의 쇳소리를 저장하는 오후라고 하자
읽고 있던 시집으로 탁 칠까 하다가 그만 둔다고 하자
도시의 오후 풍경은 선팅 유리 밖으로 땅거미 지는 어스름 같다고 하자
밤이 오면 어둠은 머리가슴배를 통짜덩어리로 만들어 두렵다고 하자
집에 가기위해 시계를 목에 걸고 옷깃을 여민다고 하자
사당역 뒷골목 사거리에서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양손에 들고 겅중겅중 걸어간 여자를 떠올린다고 하자
계간 『예술가』 2018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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