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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주 시인 / 레밍 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의 정부는 중절모다 그곳엔 깃발과 각료와 공관이 있다
약도에서 주저를 찾는다 삼거리에는 가게가 있고 주점이 있고 만화방이 있다 삼거리에는 흙 묻은 바짓단이 있겠지 주저하기 알맞은 곳
열시 방향의 화폐를 내고 여섯시 방향의 담배를 사고 그리고 두시 방향의 술을 마시면 되겠지
세 길이 맞닿은 곳에는 동그라미가 있다 사라지거나 절벽이 되거나 이정표들의 무덤이거나 원형 결투장이거나, 복수를 등에 진 아나키스트들이 모여든다
영역이 비만해진 뒤 명령이 비루해진 뒤 직선으로 돌진하는 레밍과 우르르 레밍을 뒤쫓아 달리는 레밍, 레밍들
바다가 그리운 건 아니다 약도에 직선의 끝은 없다
자정을 지난 정부가 있다 수억만 년 전부터 머릿속에 그려 있던 약도를 찾는다 길이 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약도가 틀렸음이다
삼거리에서 후훗, 손바닥에 침을 뱉어 튕겨볼 일이다 총성 하나를 미리 품어 볼 일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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