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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 / 바겐세일
오늘도 공단거리 찾아 헤맨다마는 검붉은 노을이 서울 하늘 뒤덮을 때까지 찾아 헤맨다만은 없구나 없구나 스물 일곱 이 한 목숨 밥 벌 자리 하나 없구나
토큰 한 개 달랑, 포장마차 막소주잔에 가슴 적시고 뿌리 없는 웃음 흐르는 아스팔트 위를 반짝이는 조명불빛 사이로 허청 허청 실업자로 걷는구나
10년 걸려 목메인 기름밥에 나의 노동은 일당 4,000원 오색영롱한 쇼윈도엔 온통 바겐세일 나붙고 지하도 옷장수 500원짜리 쉰 목청이 잦아들고 내 손목 이끄는 밤꽃의 하이얀 미소도 50% 바겐세일이구나
에라 씨팔, 나도 바겐세일이다 3,500원도 좋고 3,000원도 좋으니 팔려가라 바겐세일로 바겐세일로 다만, 내 이 슬픔도 절망도 분노까지 함께 사야 돼!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박노해 시인 / 바람이 돌더러
모래 위에 심은 꽃은 화창한 봄날에도 피지 않는다 대나무가 웅성대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갈대가 두 손 쳐들며 아우성치는 것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까닭이다 돌멩이가 굴러 돌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에 굴러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함이다
대나무나 갈대나 돌멩이나 바람이 불기에 소리치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돌아오는 건 낙인 찍힌 해고와 배고픔 몽둥이에 철창신세뿐인 줄 빤히 알면서 소리치며 나설 자 누가 있겠느냐 그대들은 우리더러 노동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우린 돌처럼 플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다만 모래밭의 메마른 뿌리를 기름진 땅을 향해 뻗어가야겠다 우리도 봄날엔 소박한 꽃과 향기를 피우고 싶다 우리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고 돌사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바람이 드세게 몰아쳐 더이상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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