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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강록 시인 / 처음으로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5.

황강록 시인 /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이런 어색한 일은 될수록 피해왔었다

 

  어버지가 밥을 차려주었고

  나는 꼼짝 앉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단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 같은 건

 

  될수록 피하고 싶은 어색한 일

  이었다. 가급적이면 떠들썩하고, 정신없이 바쁘고... 그렇게 얼떨결에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일

 

  아버지는 늙은

  얼굴만 빼고는 몸이 모두

  낡은 기계로 되어 있었다. 삐걱거리고 균형

  을 잘 잡지 못했다. 무척

  오랫동안 그 불편한 기계로

  험한

  일들을 해왔었나 보다. 당연히

  구식의 기계로는 밥을 맛있게 차릴 수 없었다. 당연히

  아버지 혼자서 밥을 찬찬이, 맛있게 차려 본 적이 없기도 할테고....

 

  아버지가 차린 맛없는 밥을 우린

  말없이 먹었다. 원래

  아버지와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오죽하면

 

  이번이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된 뒤, 한참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출연한 꿈일까 말이다. 매우 드믄

 

  그 순간을 아버지와 난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알 수 있었다.

 

  난 쑥스럽지만

  기계 몸으로 삐걱대며 일어서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부축했고

  쑥스럽지만

  좀 더 자주 아버지와 이렇게 단 둘이 천천히 밥이라도 만들어 먹을 껄 그랬다고

  말했고 쑥스럽

  지만....

 

  꿈이 끝나기 직전에 입을 겨우 열어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가 수줍어하고 있고

  기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지금이 몇 시 인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4월호 발표

 

 


 

황강록 시인

1969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철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0년 월간 《현대시》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옥에서 뛰어놀다』(시인시각, 2009)가 있음. 현재 시인, 작곡가, 공연 연출가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