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우 시인 /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구반포 상가 앞 버스 정류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녀는 건널목에 서 있다.
전화 박스 속에서 보았던, 적신호(赤信號)에 걸린 거리, 오후 6시 반.
인간의 내장을 긁어내주는 도살장(屠殺場)으로 가는 길이 어디예요?
어디냐니깐요? 운명의 전갈좌가 가리키는 곳 말예요?
이미 물렸어요. 번지는 독을 해독해주는 약국(藥局)이 건너편에 있나요?
마법(魔法)에서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은 환멸뿐인가요?
집 나올 때 문에다가 이미 못을 다 박아버렸어요.
아뇨, 네, 네, 아니란깐요. 주소는 잊어버렸대두요.
미국 가는 날짜 말인가요?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요.
그녀는 그때야 그녀를 완강하게 가로막고 있는 게 적신호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리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사람들이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흰색의 횡단선을넘어 정차해 있는 차들 앞을 그녀는 타박타박, 천천히 걸어서 건넜다. 청신호는 벌써 깜박깜박 그것의 단명(短命)을 알렸다.
건넌다는 게 뭘까, 그녀는 생각했다.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그 길은, 검은 페이브먼트 때문이었을까, 자기의 관(棺)을 타고 건너는 검은 강물 같았다.
반포 켄터키 치킨. 냉방완비.
모가지와 발목이 잘린 닭들이 꼬챙이에 꽂혀 전기구이통 속에서 실타래처럼 뱅뱅 돌려지고있는 것을 그녀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체를 기름에 튀겨서 맛있게 뜯어먹는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잃어버린, 황금 비늘로 덮인, 억센 발톱에 대해, 투쟁의 피 흘리는 벼슬을 기념하기 위한 붉은 왕관(王冠)에 대해, 새벽의 숲을 일깨우는, 황금 뿔로 된 부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아냐, 그게 아냐,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먹이만 보면 일렬횡대로 꽥꽥 소리지르며 몰려드는 양계장 폐닭들이었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치킨집 문이 열릴때마다 양념으로 가린 닭살의 누린내가 문의 풀무질에 의해 밖으로 뿜어져나왔다. 하필이면 정류장이 치킨집 앞에 있을 게 뭐람,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이마에 칼자국 같은 주름이 새겨졌다. 반바지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그의 가족을 데리고 치킨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오늘 사냥은 위험한 것이었소, 여보.
이놈의 눈깔은 어두운 데서 날 지켜보고 있었어. 보라구. 이놈의 살의의 이빨들. 하마터면 이놈의 이빨이 나를 물고 그의 가족들의 으르렁거리는 식욕(食慾) 앞에 끌고 갔을 뻔했소. 그들이지금 그런 것처럼.
내장을 긁어낸 도살장에서의 단란한 저녁 한 끼, 그녀는
육식의 가족을 경멸했다. 느끼한 것들은 참을 수가 없단 말야, 혐오감이 그녀의 위(胃)를 또쓰리게 한다. 다치기 쉬운 밥통을 달고 날아다니는 새.
위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 김선생 요즘 밥통은 괜찮아요, 당돌한 그 남자는 말했었다. 모래가 가득 찬 밥통을 그녀는 달고 있다고 그녀는 지금 생각했다, 어떨지 몰라, 내장을 모두 도려내버리면. 내 영혼은 증발할까?
먹을 필요를 떼내버리고 날아다니는 새. 지평선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흙 묻은 날개짓. 양산리들판을 지나가는 미군 폭격기의 그림자를 그녀는 생각했다. 푸른 띠와 붉은 별들로 장식된, 순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한글 아크릴 간판을 단 `맥도널드 도우넛'집을 그녀는
본다. 후리후리한 서양 남자가 스매시를 멕이기 위해 라켓을 높이 쳐들고 있는 마네킨을 쇼우 윈도우에 내놓은 스포츠 용구 전문점 `월드컵'을 그녀는
본다. 카페 `추억'과 레스토랑 `숲속의 빈터'를 그녀는
본다.
그녀는 어스름이 석회수의 침전처럼 내리고 있는 거리를 보았다.
동대문 야구장을 한 바퀴 돌고 오는 289 버스가 붉은 `서울대'라고 쓰인 종점(終点)을 향해질주하고 있었다. 진흙으로 빚은 사람들은 가득 담고. 신나를 끼얹어도 안 탈 사람들을 가득 담고. 불구덩으로 들어가는 진흙 인형.
너 어디 가니? 미국! 미이이이이국!
거기가 네 터미날이니! 아냐, 터미날은 사람들이 떠나는 곳을 의미하지 않니?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반포 치킨집 앞 버스 정류장에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 옆, 사람들이 담배 꽁초를 버리거나 가래침을 뱉도록 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쓰레기통에 부착된, 이장호 감독, 안성기 이보희주연의, 철 지난 `무릎과 무릎 사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기쁨은 오로지 생식기(生植器) 근처에 있으며,
이 시대의 사랑은 오로지 치정(癡情)이야.
자기를 치근덕거리며 따라오는, 자기를 김선생이라고 부르는 그 당돌한 남자가, 그녀는 지겨웠다.
뭐 하러 그곳에는 가는 거요, 회한을 늘리러? 그 지겨운 남자가 물었다.
아뇨.
그럼? 깨지러 가는 거요? 그 지겨운 남자가 물었다.
아뇨, 깨질 것도 없는 걸요.
남자가 말했다. 벼랑에까지만 동행해주겠다고.
왜 가로막는 거예요? 비켜주세요!
남자는 말했다. 이건 개입이 아니라 동행이라고.
그녀는 정류장 이정표를 올려다보았다.
328951324번 : 무릉동(武陵洞) 무지개 아파트.
298471325번 : 도화동(桃花洞) 진달래 아파트.
그래, 난 지금 전갈좌에게 가고 있는 중이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난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가는 게 아냐, 너희에게 소생(蘇生)의 닭피를 먹여줄 성배(聖杯)를 찾으러 가는 것도 아니란 말야, 그녀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있지?
난 전갈좌의 독을 훔쳐와야 해, 독에서 깨어나는 순간 난 잠들거야,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 무릉동의 휘황한 무지개 기둥에 스며드는 물의 높이로 재는 시간으로는, 몇 초쯤 지났을까? 그 도화동의 진달래 꽃잎 위에 소름처럼 돋은 이슬방울에 저녁 노을이 스치는 순간만큼 지났을까?
그녀는 타박타박,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타박타박,
그리고 타박타박, 자신의 등뒤에서 따라오는 자신의 발소리를 그녀는 들었다. 타박타박.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은 변명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인지, 타박타박.
되돌아보면 돌소금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했다.
어머, 너 언제부터 여기까지 따라왔니?
그녀의 등 뒤에는, 놀랍게도, 눈부신 금빛으로 도금된 낙타 한 마리가 꼴 먹으러 따라온 굶은 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냐, 내 손에는 너와 연결된 고삐가 없다구.
낙타는 너무나 찬란해서 만져지지가 않았다.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낙타는 냄새도 소리도 가닿을 수 없는, 다만 빛의 윤곽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낙타는 영화 기법으로 말한다면`오우버 랩' 수법으로 차량들과 사람들과 가두 신문대와 버스 토큰 판매소 속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지상의 시간으로 피엠 8:30 을 가리키는, 구반포 상가 앞을 통과하는, 영등포―천호동 구간의 21번 버스가, 상계동―봉천동 구간의 303번 버스가, 신세계 백화점―방배동 구간의 42번 좌석버스가 막 낙타의 몸을 지나갔다.
신기해. 넌 어떻게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공간 속에 있을 수 있니?
저 아파트 좀 봐. 사람들은 공중(空中)에까지도 사적(私的) 소유(所有)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가격을 매겨논 거. 넌 다치게 하지도 무너뜨리지도 않고 지나가는 구나.
그녀는 이제, 구반포 삼거리에서 강변에 이르는 길로 꺾어들어갔다.
그 길은 어둑어둑했다. 수양버들 가로수 그림자 때문에. 그렇지만 수은등 불빛을 받는 수양버들은 분수의 꼭대기 같앴다, 그녀는 생각했다.
낙타야, 목마른 낙타야, 너의 염통에는 순수한 의미의 물만 흐르고 있겠지? 먼 길을 온 너의 밥통엔 나처럼 모래만 가득하겠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의 그늘진 등성이같은 황금 낙타의 등을 힐끗, 쳐다본다.목욕탕에 게으르게 드러누운 여자의 알몸 같애, 그녀는 생각했다. 내 몸에 가까이 오지 마랏. 내 영역에 발 들여놓는 자의 발을 전갈이 물으리라. 그녀는 하악의 뼈가 드러나게 이를 악물었다.
낙타, 넌 질량이 없어, 없어, 넌, 내장이, 넌 기쁨도 괴로움도 없어.
낙타, 너 임재(臨在)할 뿐, 부재(不在)했어.
그녀는 지나온 길에 남긴 발자욱마다 자신의 핏자국을 남긴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그런 흔적으로써, 변명할 길 없는 나의 부재를 옹호하게 될지도 몰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곤하다, 그녀는 느꼈다. 그녀는 어둡고 후미진 곳을 먼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현기증을 뚫고 반포 주공아파트 2단지 열 관리소의 굴뚝이 높이 치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칼칼한 목구멍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보온의 하수구(下水口).
편히 잠들고 싶어하는 주민들의 남근숭배(男根崇拜) 같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따뜻한 물의 행복감을 보내주는 복잡한 배관을 하체에 묻은, 지금은 식어 있는 근(根),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에 서약하고 정관수술을 하고 입주한 그들의.
그녀는 수양버드나무에 기대었다. 한강 쪽에서 여름밤 강바람이 불어왔고, 수양버들은 냇물에 머리를 감는 조선조 중엽의 여인네처럼 머리를 풀었다.
사람들이 모래와 시멘트를 짓이겨서 집을 짓고 보도블럭을 깔고 검은 역청으로 길을 덮기 전,여기는 강물이 제 입으로 물어다 쌓아놓은 모래밭이었을 거야, 그녀는 사라진 강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오한을 느꼈다, 갑자기, 나는 이제 서른한 살이야, 그녀는 떨었다.
서른 한 살, 작은 디 엔 에이 정보를 가진 벌레가 이렇게 다 커버렸다니, 그녀는 떨렸다.
낙타야, 나의, 낙타야 어서 온. 나를 태워다오.
여기서부터 벼랑이야. 일생에 단 한 번만 건너는 것을 허용하는 강이야.
희망이 우리를 건너게 할 거야. 희망(希望)이.
나이 : 서른 하나, 성별 : 여자, 직업 : 미상, 주소 : 미상인 한 `사람'이 1986년 6월 19일(목요일) 21시, 검은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허형만 시인 / 무덤은 하나 외 1편 (0) | 2020.01.05 |
|---|---|
| 홍일표 시인 / 알코올 (0) | 2020.01.05 |
| 황강록 시인 / 처음으로 (0) | 2020.01.05 |
| 강인한 시인 / 꿩이 털 빠지면 저만 춥지 외 1편 (0) | 2020.01.05 |
| 황성희 시인 / 鄕歌(remix) (0) | 2020.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