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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일표 시인 / 알코올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5.

홍일표 시인 / 알코올

 

 

  남몰래 흐느낀다 너는

  입도 입술도 없이

 

  보이지 않아서 더 아픈 때가 있다

  아무 말 못하고 혼자 숨어 우는

  사람이 있다

  자작나무의 얼굴로

  물안개의 젖은 숨결로

 

  밤이 깊어 너의 입술에 도달한 차갑고 뜨거운 속엣말들이 치자꽃처럼 핀다

  흰 달빛의 표정으로

  어디에도 없는 너는

  얼굴을 지우고 머리칼을 지우고

  말의 가장 먼 바깥에서 은밀히 휘발하는 비애처럼

 

  소리를 죽이고

  마음의 색깔도 지우고

  이제는 다 놓아버린 물의 감정들

  오직 투명함으로 너는 조용히 일어서서 걸어간다

  이슬의 어깨가 파르르 떨고

  공기의 입술에 얹어놓은 이름이 휘파람처럼 사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곳

  물 밖의 어디 먼 곳에 물의 신전이라도 있는 듯

  맑고 가벼운 날개, 파아란 눈빛 하나로 찾아가는

  아스라이 먼

  모든 슬픔의 정결한 성지

  가슴 한쪽 없는 이들이 그림자를 끌고 혼령처럼 찾아가는

 

웹진 『시인광장』 2016년 8월호 발표

 

 


 

홍일표 시인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매혹의 지도』, 『밀서』와 평설집『홀림의 풍경들』이 있음. 2016년 제6회 『시인광장』 시작품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