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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시인 / 만가(挽歌)
제일 먼 곳이 가장 가까워지는 가을 가을밤에는 먼 먼 사랑아 창 밖 풀벌레 소린 듯이 만가를 불러다오
깔멜 수도원 노원장 수녀님 하얀 속눈썹 마른 수풀 너머로 고여 파아란 호수 눈빛도 잠시 흔들리듯 나는 듣고 싶네
죽음을 무릅쓰고 피 흘리며 걸어가는 성난 짐승 같던 그 여름을 비 맞는 단풍처럼 울고 싶던 목청을
가을밤엔 소리 낮춰 조그맣게 불러다오 제일 먼 곳에서 눈 떠 들으리 강 건너 불빛처럼 나는 들으리.
월령가 쑥대머리, 문학사상사, 1990
유안진 시인 / 맨발
무엇을 신었어도 늘 맨발이었다 맨발처럼 민망스럽고 맨발처럼 당당했다
등뼈가 휘어지도록 반백 년을 걷고 걸어 닳고 닳은 발바닥은 못과 굳은 티눈 발톱은 잦아지고 발가락들 일그러져 그물 힘줄 앙상한 발등뿐인 내 두 발아
무엇을 신겨봐도 아직도 맨발이다 맨발처럼 시리다 저리다 맨발처럼 쥐가 난다.
구름의 땅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시와시학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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