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해 시인 / 어머니
남도의 허기진 오뉴월 뙤약볕 아래 호미를 쥐고 밭고랑을 기던 당신 품에서 말라붙은 젖을 빨며 당신 몸으로 갈 고기 한 점 쌀밥 한 술 연하고 기름진 것을 받아먹으며 거미처럼 제 어미 몸을 파먹으며 자랐습니다
독새풀죽 쑤어 먹고 어지럼 속에 커도 못배워 한많은 노동자로 몸부림쳐도 도둑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 안하고 놀고 먹지도 남을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나로 하여 이 세상에 단 하나 슬픔을 준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오직 하나 소원이라면 가진 것 적어도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이었지요 저는 열심히 일했고 떳떳하게 요구했고 양심대로 우리들의 새날을 위해 싸웠습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우리에겐 풍파가 몰아쳤고 당신은 더 불안하고 체념 속에 주저앉아 다시 나를 붙들고 애원하며 원망합니다 어머니 환갑이 넘어서도 파출부살이를 하는 당신의 염원은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가난했기에 못배웠기에 수모와 천대와 노동에 시퍼런 한 맺혔기에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에의 바램은 마땅한 우리 모두의 비원입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의 염원을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에의 바램을 잔혹하게 짓밟고 선 저들은 간교하게도 당신의 비원 속에 굴종과 이기주의와 탐욕과 안일의 독사로 도사리며 간악한 적의 가장 집요하고 공고한 혓바닥으로 우리의 가장 약한 인륜을 파고들며 유혹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소원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비원을 위하여 짓눌리고 빼앗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불효자가 되어 저 참혹한 싸움터로 울며울며 당신 곁을 떠나갑니다
어머님의 피눈물과 원한을 품고서 기필코 사랑과 효성으로 돌려드리고야 말 우리들의 소중한 평화를 쟁취하고자 피투성이 싸움 속에서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펄럭이며 빛나는 얼굴로 돌아와 큰절 올리는 그날까지 어머님 우리는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당신 속에 도사린 적의 혓바닥을 냉혹하게 적대적으로 끊어 버리는 진실로 어머니를 사랑하옵는 천하의 몹쓸 불효자 되어 피눈물을 뿌리며 싸움터로 나아갑니다 어머니 어머니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박노해 시인 / 얼마짜리지
말더듬이 염색공 사촌형은 10년 퇴직금을 중동취업 브로커에게 털리고 나서 자살을 했다 돈 100만 원이면 아파 누우신 우리 엄마 병원에 가고 스물 아홉 노처녀 누나 꽃가말 탄다 돈 천만 원이면 내가 10년을 꼬박 벌어야 한다 1억원은 두 번 태어나 발버둥쳐도 엄두도 나지 않는 강 건너 산 너머 무지개이다 나의 인생은 일당 4,000 원짜리 그대의 인생은 얼마 우리 사장님은 하룻밤 술값이 100만 원이래는데 강아지 하루 식대가 5,000 원이래는데 3천억을 쥐고 흔든 여장부도 있다는데 염색공 사촌형은 120만 원에 자살을 하고 열 여섯 우리 동생 공장을 가고
오 오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랑 우리의 생명은 얼마 얼마?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인한 시인 / 새장 외 1편 (0) | 2020.01.08 |
|---|---|
| 주하림 시인 / 댕기에 기생하고 있는 젊은 유학자와 흰 새의 그림자가 그대를 말하길 1 (0) | 2020.01.08 |
| 차주일 시인 / 回의 완성 (0) | 2020.01.07 |
| 유안진 시인 / 만가(挽歌) 외 1편 (0) | 2020.01.07 |
| 천서봉 시인 / 윤달 (0) | 2020.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