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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림 시인 / 댕기에 기생하고 있는 젊은 유학자와 흰 새의 그림자가 그대를 말하길 1
털로 가득 찬 가죽 장갑과 안경
그 날 「꽃덤불」이라는 민족예술극을 보고 왔어
길바닥 흩어진 잣을 보고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것을 인정했지 나의 오래된 꿈과 옛 시간에 부쳐. 당신과의 날들도 시간이라 불러보고 싶어 더는 인력거 노릇도 공사판 판자 역할도 싫다 내가 증오하는 것들로부터. 어제는 금지된 상징 대신 약간의 급료를 받았고
이상한 환대
무뚝뚝한 당신 몸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을 모아보마
그것은 시공간을 떠도는 기침이야 종종 들르던 술집에서 오가던 더러운 만담 난 귀화를 꿈꿨고 어디선가 조이고 닦고 있을 기계소리… 띠를 두른 사람들… 그 푸른 기침을 모아 만든 것이 거리를 흡족하게 떠도는 예술가들일 거라고. 어떤 극이었지? 목욕탕과 전집 옛날 사람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던… 목욕이란 단어가 통용되기 전이야 시절 저마다 예쁜 첩의 품에서 죽어갈 수 있던
습작기
내 소설의 첫 페이지는 온통 수증기였고
광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한자로 욕을 하지 너를 패죽이고 싶다 너를 패죽이고 싶어 당신은 내게 악몽을 꾼 것이라며 타일렀지만 아름답기 위해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없어져야 하며 우선 나는 아무나 안고 싶다 그것이 살이 찌고 얼굴이 붓는 일이라 할지라도 얼마 전 美에 대한 잡담이 큰 싸움으로 번졌지 그 때 나는 거리로 도망쳐 해묵은 서사 대신 비문(悲文)을 산일에 대해 생각했어 어떤 먼먼 계절에 긴긴 비가 내렸을 거라고
가입절차
쌓아둔 종이들이 창문 밖으로 날아가
제대로 학교를 마친 적이 없는데 당신은 나를 박사라고 부르고 있더군 차라리 악담이 낫겠어 어때. 지난달에는 ‘당’에 들어갔어 그곳은 우리가 실현한 ‘효’와 비슷하지 파괴와 훼손을 목표로 하며 결렬을 최대화 시키는데 목적을. ‘당’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총부리를 내 목구멍에 들이댔지 동지, 동지 누가 누구에게 반역자라는 거냐 제발 오늘밤, 나는 핵심인물이 되긴 싫어 멍청한 애인만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내가 쥔 것이 상징이 아니라 실성이 될 수 있는 시대 시련과 추위만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곳이 당신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꿈꾸던) 나의 일터가 맞다면
터프티드 덕(Tufted duck) 트리오
이제 존 웨인보다 임화같은 친구들이 갖고 싶다 인력거가 아니라 인력꾼이 되고 싶다 허구보다 억만 년이 되고 싶다 누군가 옳다고 말해주면 목숨을 걸고 안아주고 싶다 나는 말할 때마다 틀려준다 어떤 맹세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왼쪽 눈이 아프다 당신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준다
새의 흰 그림자 조식 때의 얼굴 절망 태도
백양나무숲: 예언
당신이 그려준 초상화를 늘 옆에 두고 있어 어떤 못생긴 사상가를 닮았어요 하청업체 여직원이 내 생긴 것을 평해주더군 그년을 잠자리로 끌고 갈 거야 세 시간 안에 당신을 만나 세월에 균열을 일으킨 세 시간 안에 내 일터 불빛들과 기침들이 수염을 깎고 폭동을 결심하는 세 시간을 지나 사랑을 쥐어뜯고 험담하던 매일 아홉 알의 세 시간을 지나
농담마세요 당신은 그새 이상해보여요
일거리가 떨어졌어 친구라곤 기다란 나무 그림자 뿐 처음으로 나를 버린 일들이 나를 버릴 일들과 속정을 나눠 옆방 투사(鬪士)에겐 커피를 대접하면서 왜 내게 쓴 편지에는 효와 사상으로 가득한 거지? 이루어지지 않아 어떤 역할이라도 좋다고 한다면 그것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한 것들마저 히스테릭해지고 있을 때 그대여… … 당신이 내게 처음 「자유」와 「소학」을 읽어주고 떠난 밤이야
웹진 『시인광장』 2011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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