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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용미 시인 / 반대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8.

조용미 시인 / 반대편

 

 

  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 저 사람은 나의 반대편에서 우선 한사코 얼굴이 없다 긴 머리만 등 뒤로 드리우고 햇살에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다 선명하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반대편이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목을 두르고 있는 푸른색 스카프는 나의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입은 너무 환한 밝은 색 셔츠는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다 처음 보는 뒷모습이다 오른팔을 뻗어 어딘가에 손을 얹고 있다

 

  맞은편 오른쪽에서 그녀를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얼굴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밀가루 같이 풀어져 날리는 햇살을 받으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일까 그녀는 나의 반대편이다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얇은 스카프와 언젠가 입은 듯한 기억이 나는 아주 밝은 색 옷을 입고 있다

 

  등을 보이는 그녀 쪽은 너무 환하고 얼굴이 보이는 사람은 어두운 붉은색 옷에 검은 가방을 메고 있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사진 아래 이런 제목이 적혀있다 -피닉스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반대편이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녀를 돌려세울 수 없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3월호 발표

 

 


 

조용미(曺容美) 시인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과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이 있음. 김달진문학상과 김준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