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조연호 시인 / 점성(占星)의 성속사(聖俗史)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8.

조연호 시인 / 점성(占星)의 성속사(聖俗史)

 

 

물결이 오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끝 약 200페이지 남짓한 지점이었다. 편지는 날아올라 그것을 본 내게 별이 더 이상 비약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우주가 시작된 곳은 어디인가’하는 질문에 천문학자는 ‘그것은 그것의 내부에서 온다’고 대답했다.

 

그가 말한 것은 죽은 것을 포란하는 어떤 성조(成鳥)에 관한 것이었다. 수많은 높임말이 쏟아져 나오는 책이 동물의 배태(胚胎) 같았기에 나는 그 책의 산도(産道)를 찾아 새가 날고 있다고 여겼다. 허무한 도서관이 발바닥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자침(磁針)의 방향은 허공의 생에게로 향한다.

 

방충망 틈으로 잔잔한 환역(寰域)이 와도, 잔잔함의 부피는 방충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흉상의 하체를 닮았고 허탈하게 내 귓전으로 다가올 두 다리를 쥐고 있었으니까. 시간 역시 발바닥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선천의 혹은 후천의 애인들에게 사람들은 감격했고, 토론했고, 비탄에 빠졌다.

 

죽은 동물의 머리 뼈 안에 꿀을 만드는 벌의 이야기다. 서쪽의 별자리는 소변을 모아두는 작은 두개골 같았다. 옥상이 구름을 열광하더라도 잘 찢어지는 종이공예품 같은 성감대는 탓하지는 말자, 사람은 안정과 확신에서 신비를 얻기도 하는 거니까. 밤은 신발처럼 뒤엉킨 우리들의 절종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할머니 저 괴로운 별이 자기 발을 닦아달라고 울부짖고 있어요. 역연(逆緣)의 별에게 오래 물었던 구중청량제를 뱉는다.

 

또 다른 이야기 <오케아노스의 일곱 딸>에서, 옆집 아저씨가 깨진 망원경에게 “서쪽 하늘에서 만나자”라고 말한 건 너무 슬펐다. 오케아노스의 일곱 자매는 반신(半神)들을 배고, 매일 밤 오줌 누기가 힘들었다. 내 베개는 종종 엄마의 발목 자국을 주먹만큼 자란 여동생처럼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다. 더러 인간을 사랑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 별도 있었다. 임신중독, 그것은 밤하늘을 무심한 것으로 상상한 자의 증상이기도 했다.

 

웹진 『시인광장』2008년 가을호 발표

 

 


 

조연호 시인

충남 천안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계절』(2004. 천년의시작)과  『저녁의 기원』(랜덤하우스, 2007), 『천문』(창비, 2010), 『농경시』(문예중앙, 2010), 『암흑향』(민음사, 2014)이 있음. 제5회 수주문학상 우수상과 제10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동범 시인 / 세나드*  (0) 2020.01.08
허형만 시인 / 아버지 외 1편  (0) 2020.01.08
황지우 시인 / 나의 누드  (0) 2020.01.08
조용미 시인 / 반대편  (0) 2020.01.08
강인한 시인 / 새장 외 1편  (0) 2020.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