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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형만 시인 / 아버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8.

허형만 시인 / 아버지

 

 

신문에 난 이름 석자 때문에

아버지 셔츠바람으로 신새벽을 달려오셨다

무사하구나 이놈아

고래 심줄 같은 핏줄기로 와락

껴안으시는 아버지

간밤엔 뜬눈으로 지새우셨다는

한결 더 패이신

칠순 가까운 눈자위에

새벽 이슬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 아픔을 위하여

 

 

오늘도 동문회가 끝나고

우리는 매월 그랬듯이

회장댁에서 화투를 쳤다

 

끗발이 안 오르면

하나님은 삼봉도 안 치나요

소리 소릴 질렀고

 

조이던 화툿장 모서리에

손바닥이 아릴 즈음

망연히 혼자 기다릴 아내 때문에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한켠에 차려진 술잔을 기울며

이 풍진 세상

그래도 세월은 가는데

아깝다 금쪽 같다 피마름이여

 

동트는 새벽은 가깝고

두 손 모아 무릎 꿇어 화투치며

비로소 새로이 깨닫는 것은

뜨거운 희망이었다

든든한 꿈이었다

이 시대의 우리네 아픔을 위하여.

 

萍 문학세계사, 1988

 

 


 

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중앙대 국문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무기가 없다』 등과 시선집으로 『새벽』, 활판시선집 『그늘』 등과 평론집으로 『시와 역사 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