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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인한 시인 / 새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8.

강인한 시인 / 새장

 

 

야생의 새 한 마리 새장에 갇혀 있었습니다. 길고 긴 꿈결인 듯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부리에 머물던 햇빛 삭은 지 오래고, 예전의 깃털을 간질이던 차가운 바람결도 갇혀 사는 새를 잊어버렸습니다. 동그란 눈망울에는 새파란 하늘이, 하늘이 여름을 넘기고 가을 겨울을 보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야생의 새 한 마리 사시사철 벙어리로 벙어리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달도 별도 한 오라기 꿈도 없는 밤이었습니다. 비비비비비(非非非非非)! 꼭 한번 새가 울었습니다. 오, 문득 그때였습니다. 새장의 굵은 철사가 핏빛으로 조금씩 물들기 시작한 것은.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 양파

 

 

지난 겨울에 사 쟁여 놓은

양파 다섯 관이

연탄과 화분을 이웃하며

시멘트 부엌에서 겨울을 났다.

우리 집 찌개 속에도 들어가고

국거리랑 양념 속에도 간섭해 주며

긴긴 겨울을 나는 동안

여나믄 개가 남아서 정구공같이 궁글고 있다.

껍데기 안에 또 껍데기를 껴입은 채

하얀 섬유질의 그리움으로

겹겹이 싼 알맹이는 무엇이었나

나는 잘 모르지만

가엾어라,

마당의 수도꼭지가 더운 물을 필요로 하는

이 겨울 동안에 소근소근 눈을 뜨더니

입춘날 아침엔 제법

새끼손가락만한 파란 줄기를 내고 있었다.

냉혹한 부엌 바닥에 마른 뿌리로 누워서도

양파는 기어이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었는가

빈사의 몸뚱이 속에

불보다 뜨거운 자유를 한 줄기 태우고 있었다.

신앙보다 깊은 봄을

양파는 아아, 온몸으로 피워내고 있었다.

 

우리 나라 날씨, 나남, 1986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동길.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가 있다. 37년간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명예퇴직을 하였다.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