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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시인 / 나는 어떤 골목으로부터 버려진 채
이제 그 골목을 걷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가로등 불빛은 그대로인데 나는 기다릴 사람이 없어서 머리가 희어진다. 막 파종된 씨앗들처럼 잠든 아이들의 무릎이 단단했었다. 언제쯤 피가 도는지 밤이 아주 길었다. 봄이 오면 물가의 버드나무 아래로 놀러 가려고 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로 물고기들이 모여들 동안에 자꾸 자라는 머리통을 만져보고 싶었다. 물속 그늘에서 까맣게 반짝이는 얼굴로 요리조리 헤엄치면 버드나무 잎사귀를 띄워주려고 했다. 어떤 슬픔은 이렇게 맑기도 하다고 말해 주려 했다. 그날 밤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골목은 그 골목과 닿아 있는 게 분명해서 달이 뜬다고 말해보는 것이다. 깜깜한 골목길에서 버드나무 잎처럼 창문들이 환해지는 건 내가 아는 사람들이 그 집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오랜 기별처럼 그냥 알 수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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