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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병률 시인 /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0.

이병률 시인 /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꽃향은 두고

마늘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신(神)에게 다가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여름호 발표

 

 


 

이병률 시인

1967년 충북 제천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문학동네, 2003)와 『바람의 사생활』(창비, 2006) 그리고 『찬란』(문학과지성사, 2010)이 있음.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