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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달자 시인 / 겨울의 노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3.

신달자 시인 / 겨울의 노래

 

 

이 겨울

너의 정직은 얼지 않았다

영하 20도 혹한

꼼짝 못하는 하늘의 명령에도

기어이 흐르고 흘러야 할

결코 멈출 수 없는

너의 정직

 

살 깊이 출렁이는 파도 아래

푸르게 푸르게 흐르는 눈물

혼자 죽고 혼자 죽은

몇 번의 죽음도 얼지 않았다

 

죄를 지어야 피가 도는

꿈이 되는

삶이 되는

업보

끈끈한 땀도 얼지 않았다

 

몇천년 전 예루살렘 땅

돌맞아 쓰러진

창녀를 알지

피묻은 돌

수세기의 잠을 깨고

내 침상(枕上)에 와

내 얼지 않는 정직을 향해

날아들었지

 

창녀는 죽고

너의 정직은 돌에도 죽지 않았다

결코 죽지 않는 너의 정직

세상 곳곳에서 죄의 이름으로

추방될지라도 어리석음일지라도

네 정직의 뿌리는

눈물에 잠기고

얼지 않으리라 얼지 않으리라

너의 정직은

오늘도 돌을 맞는다.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신달자 시인 / 겨울 침상(枕上)

 

 

한사발 냉수에

큰 바다가 들어와 쓰러져 있다.

 

이미 폐수가 된 눈물이

천길 수심(水深)속

기둥을 세우고

체온을 떠난 나들이 옷이

찬기 뻗히는 벽에 걸려

수의(壽衣)의 냉동함을 자아내고 있다.

 

얼지 않는구나

물은 싸늘히 죽어 갔지만

짜고 짠 고뇌는 얼지 않는구나

오 얼지 못하는 나의 시장기

가시 고드름 속 내 잠자리

얼지도 못하는 피의 요동(搖動)

 

어느 명령보다도 더 단호히

약한 것을 얼게 하는

이 겨울에

눈물을 흘리는 자(者)는 얼음을 깨어라

 

우리들 머리맡께

더 싸늘히 숨죽인 얼음

눈송이 같은 묘비가 보인다.

 

餠ï 축제, 조광출판사, 1976

 

 


 

신달자(愼達子, 1943~ ) 시인

경남 거창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2년 《현대문학》을 통해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아가』, 『아버지의 빛』 등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외에 산문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등이 있음. 1964년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1998년 '향문화대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