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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그늘
모두들 그를 바보 영감이라 불렀다. 모두들 옳다. 그는 바보였고 집도 가족도 없었다. 어쩌다 교회당 옆 작은 목장에 일거리를 얻어 그는 날마다 건초더미를 날랐고 우물에 눈을 져다 붓던 치성인(痴聖人)처럼 마냥 즐겁게 소의 똥 오줌을 퍼냈다.
이제 그는 누워 있다, 거적을 덮고 교회당 그늘 건초더미 위에 나흘째, 바람이 반백의 더부룩한 머리를 쓸어 주고 진눈깨비가 삐져 나온 발등을 덮어준다.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를 때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연보주머니가 돌아다닐 때 사랑을 배우며 신자들이 고개 숙여 기도를 할 때에도 그는 누워 있다, 거적송장이 되어 동굴 안에 죽은 예수처럼 나흘째 부활(復活)하지도 않으면서.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그로테스크한 죽음 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비마(悲魔)가 찾아 들어도 북어(北魚)는 슬프지 않아 한쪽 눈에서만 가짜 눈물이 흐른다 진흙 위에 꼬리 끄는 예술이 꼬리의 흔적이 길면 얼마나 길까 어느 날 하나씩 내게서 멀어져 가고 모두에게서 내가 멀어져 가 죽음의 문턱을 넘는 날 죽음의 문턱에 덧니라도 걸어 놓고 북어(北魚)는 짖어야 하리라 밤의 아가리로 끌려 들어가면서 누구에게 짖어야 하나 아마 자궁을 향해 짖을 말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욥은 아니지만 하늘을 향해 토할 말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비마(悲魔)가 찾아 들어 울대를 꼬챙이로 찔러도 눈을 까뒤집어도 늙은 북어(北魚)는 슬프지 않아 가짜 눈물이 뾰족한 덧니 적시네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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