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안진 시인 / 혼자서 걸어가면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 길이 보입니다 여위어 한갓지고 비어 있는 외진 길이 편안한 누님 같은 과꽃이 피는 길이 아리아리 아픈 손짓 불러줍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길이 열립니다 한 번쯤 혼자서 울어봐야 하는 가을 울어서 제 가슴 크기도 제대로 느껴지는 텅빈 가을길이 휘어지며 열립니다
너를 사랑하는 바로 그이가 너를 울릴 그 사람이 되나니 이별 있는 사랑만이 정녕 사랑이라는 바람의 목소리를 누님의 목소리를 가을 귀는 스스로 알아 듣습니다.
`빛나는 날과 기쁜 때를 지나서 마침내 그대 눈물과 우수에 싸이리라' 27세 요절시인 러시아의 레르몬토프가 가을 황야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듯이 가을 길은 어디서나 눈물과 우수의 길입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모든 길이 가을길입니다.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비교되고 싶지 않아 외롭고 쓸모없어 호사스런 이름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눈물의 시인이 됩니다
구름의 땅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시와시학사, 1995
유안진 시인 / 흙먼지
누구의 살이었나 고운 속살이었나 미아리 고갯길의 이 흙먼지는
누구의 뼈대였나 손톱 발톱이었나 북풍에 쫓기는 골목길의 흙먼지는
살았을 적에도 목이 말랐을까 쫓기어 춥고 고달픈 삶이었을까
겨울 가뭄에 눈물샘이 마른 눈도 흙먼지에 아리고 따가워 절로 우느니
누구와 나란히 나는 울며 걷는가 그 누가 나와 함께 갈증과 추위를 나누자는가.
영원한 느낌표, 현대문학사, 1987
|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대식 시인 / 천국의 나날 (0) | 2020.01.13 |
|---|---|
| 유병록 시인 / 눈썹 (0) | 2020.01.13 |
| 신경림 시인 / 가객 외 2편 (0) | 2020.01.13 |
| 최승호 시인 / 그늘 외 1편 (0) | 2020.01.13 |
| 최하림 시인 / 가을의 말 5 외 1편 (0) | 2020.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