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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 가객
내 앵금 영 넘어가는 산새소리 내 젓대 가시나무 사이 바람소리
내 피리 밤새워 우는 산골 물소리
무서리 깔린 과일전 가마니 속 철늦은 침시
푸른 달빛에 뒤척이던 풋장꾼도 이른 새벽 눈 비비고 나앉아
골목 끝의 한뎃가마에 시래기국은 끓고
무서리 마르기 전 봇짐 챙겨 돌아가리라 새파란 하늘 잔풀 깔린 성벽을 타고 여기 한 개 그림자만 남겼네
내 앵금 이승 떠나는 울음소리 내 젓대 동무해 가는 가는 벌레 소리 내 피리 나를 보내는 노랫소리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신경림 시인 / 가난한 북한 어린이
엄마는 돈 벌러 서울 가서 이태째 소식 없고 아빠도 엄마 찾아 집 나간 지 여러 달포 이제 보름만 더 있다 온다는 어쩌다 전화로 듣는 아빠 목소리는 늘 취해 있다 두동생 아침밥 먹여 학교 보내고 열두살 난 언니 하루 안 거르고 정거장에 나와 서지만 진종일 서울 땅장수만 차를 오르내리고 다 저녁때 지쳐 돌아오면 저희들끼리 끓여 먹은 라면 냄비 팽개쳐둔 채 두 동생 텔레비전 만화에 넋을 잃었다 다시 밥 대신 라면으로 저녁을 끓이고 열두살 난 언니는 일기에 쓴다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북한 어린이들이 가엾다고 가난한 북한 어린이들이 불쌍하다고 엄마 아빠 돈 벌어 돌아올 날을 믿으면서
* 지도: 신안의 어촌으로 옛날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다리로 육지와 연결돼 있음
길, 창작과비평사, 1990
신경림 시인 / 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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