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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바퀴벌레는 바퀴가 없다
"짐승 같은 놈!" (이것은 아내가 한 말) "바퀴벌레도 즘생이야, 여보." (이것은 내가 한 말) 그러나 바퀴벌레는 근엄한 검정색 예복, 아니 정복을 입었다. 무슨 일을 감행하는 집단들처럼 틈틈에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기어나와, "맞어", 기어온다. "짜식들, 기어나오긴 왜 기어나와?" 기어나와, 넘어서는 안 될 선(線)을 넘어서 그리고 한번 무너진 그 길을 따라 자꾸 자꾸 기어 나온다. 식생활(食生活)에서 성생활(性生活)에 이르기까지 나의 사생활(私生活) 전역에 투입되어, "여보, 바퀴벌레 때문에 못 살겠어요. 우리 이살 가든가 이민을 가든가 해야지." 비닐 장판을 열면 겨우내 새끼들을 수두룩수두룩 까 놓고 이것들은 생명체일까, 병원균일까? 개체일까, 집단일까? 도무지. "이놈들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수채 구멍 속에서, 구정물 찌꺼기통에서 벽으로, 찬장 그릇 속으로, 안방으로, 책장 사이로, 이불 밑으로. 어쩌면 우리가 잠든 새 콧구멍 속으로, 머리칼 속으로, 꿈꾸는 송과선(松果腺)에까지 공룡 크기만큼 확대되어 엄습해 오는 이 야간 침입자들. 어느새 우리와 공생공사(共生共死)하자는 듯, 어느새 묵인된 이 범법자들. 오줌 누러 불을 켜면, 화다닥, 동작 그만! 들킨 바퀴벌레는 젖은 세멘트 벽에 붙어서, 그놈은 그놈대로 비상을 걸고, 부지런히 더듬이를 돌려대며 나의 접근을 관찰,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그놈은 지금 그놈의 사선(死線)에 엎드려 있다. 그 사선은 나의 사선이다. "이번이 기회야. 놓쳐선 안 돼." 여차하면 이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틈 속으로 매복해 버린다. "죽여요.. 죽여 !" : 아내도 마루 끝에서 소리친다. 짠― 긴장 : "이놈, 우리 현세(現世)의 사생활을 분탕칠하는 이 더러운 놈, 네놈의 그 더러운 , 그 지상에서의 몸을 죽여 주마. 깨끗한 몸으로 교환하여 다시 태어나거라." 중얼거리는 내 마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이놈을 갖다가, 슬리퍼로, 그냥,
딱!
(쳤다) (나는 죽였다)
뱃때기가 터져나와, 새하얀 피 같은 이물질을, 내장(內臟)인지, 지놈이 처먹은 밥인지, 를 내놓고 그의 더듬이를 여러 번 흔들며, 그의 다족을 흔들며(즉, 발버둥치며), 그러나 무성(無聲)으로 죽어 간다. 죽여 놓고도 아내와 나는 끔찍해 한다. 그리고 즐겁다. 바퀴벌레는 바퀴가 없다 : 수레를 끌지 않는다, 쌍 !
餠煎こすシ觀壙 봄 ― 나무에로, 민음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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