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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그림자에게 부치는 엽서(葉書)
바람에 거적들이 너펄거린다. 잠시 눈 부비고 네 얼굴을 들여다 본다
먼지끼고 금간 괴이한 것들 괴이한 것들이 너펄거린다 지하구멍보다 더 패인 삶의 구멍 뚫는 하수인(下手人) 지금은 그것들이 다스리는 나라 우리는 여기 갇혀 있다
웅크리고 보는 밖은 언제나 동일하지 않고 안에서만 속깊이 우는 궁핍한 자들 동일하지 않은 것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어둠이 지나면 안개 걷히고 안개보다 뿌연 궁핍한 자들 자라나며 살찌는 괴이한 것들 정말이지 언제쯤에나 자유롭게 우리를 놓아줄 속셈인가.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천양희 시인 / 길을 찾아서
이 세상 어디에나 자기 위해 길은 열려 있고 뜻있는 곳에 다른 길 있다기에 우리 모두 넉넉히 가기 위하여 한평 땅 빙빙 돌며 몸살 앓는구나 살자고 결심하면 언제 죽음인들 무섭더냐 떠나자고 결심하면 언제 동편이고 서편이고 그 끝 멀다더냐 이제는 서늘하게 폭풍 한자락으로 휘휘 일어나 그 위에 내 두꺼운 어둠도 넘어뜨려 길 속에 길 있다면 사시사철 길에게만 물어보리라 편치 못한 우리네 일 어쩌냐고 추워서 웅크린 속사정 어쩌자고 전생의 업보쯤 초개같이 버리고 가자 그리운 나라 내 넋으로 내가 살 수 있는 땅.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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