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정호승 시인 / 개망초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4.

정호승 시인 / 개망초꽃

 

 

죽은 아기를 업고

전철을 타고 들에 나가

불을 놓았다

 

한 마리 들짐승이 되어 갈 곳 없이

논둑마다 쏘다니며

마른 풀을 뜯어모아

 

죽은 아기 위에

불을 놓았다

 

겨울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붉은 산에 해는 걸려

넘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네 아이들이

미친년이라고 떠들어대었다

 

사람들은 왜

무우시래기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 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 풀을 바라보며

 

내 가랭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인 / 겨울 강에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 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새벽편지, 민음사, 1987

 

 


 

 

정호승 시인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