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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인 / 나는 선(禪)맛 느낀다
후두둑, 후두둑,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가지각색 나뭇잎들이여! 나뭇잎의 비유여!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너희들은 광주리를 들고 떼몰려온다 아이들을 데불고 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이는 장대를 들고 마음의 안정이 떨어지도록 사정없이 가지를 난타한다 후두둑 후두둑 이파리들이 비 오듯 한다 형형색색으로 얼룩진 땅에서 이파리는 떨어지는 대로 쌓이고 이파리는 눈비에 부스러지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더욱 세차게 우듬지를 흔들어라! 수동적인 땅의 수동적인 기다림 속으로 들어가거라! 그곳에는 밤의 가슴이 푸들푸들 떨고, 다람쥐 딱따구리가 새의 날갯짓보다 가벼운 발자국을 남기며 잡목 새로 사라져갈 것이다 아직도 색소가 많이 남은 잎들이 연둣빛으로 빛나고, 이끼가 숨소리 죽이고, 바람과 눈비도 무엇인가를 소곤거리며,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말할 것이다 이 긍정적인 소리들은 이대토록 내가 모르던 것! 계곡에서 저녁 안개 올라온다 나무들 짐승들이 모습을 숨긴다 들어가거라! 산속 고요 속으로 풋풋한 흙의 향기 나무 향기 존재하는 것들의 겨울 꿈꾸기 나는 산속에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른 것들을 생각한다 순간 나는 놀란다 나는 선(禪)맛 느낀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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