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서 시인 / 침묵수도원*
침묵은 귀밝은 늙은 동물, 놀랍게도 그 굽은 등을 지반 삼아 집 짓는 사람들을 보았다 선잠 든 침묵의 귓불을 건들지 않으려 가만가만 시간을 벽돌 쌓으며 걷는 젊은 수도사의 조심성 많은 뒷모습을 보았다
가을겨울가을겨울 더 깊어지는 회랑(回廊)이 침묵의 방벽이 되어주는 말없음의 시간을 보았다 삼엄한 침묵의 경계(警戒)를 피해 수도원 담장을 혼자 넘어나가는 벙어리 신이 떠올랐다 황무지 눈밭을 발자국 없이 뛰놀고 있었다 봄잠 든 침묵의 콧등을 밟고 골짜기 숲으로 산책 나선 천진한 밝은 얼굴의 노수도사들도 있었다
소리, 소리들을 보았다 수도원 뒤쪽 산맥 넘어 흰눈이 걸어 내려오는 소리 마당을 지나는 바람의 나무구두 소리 저녁 종을 당겨 새의 길을 봉쇄하는 소리 한 자루 촛불로 천년의 침묵과 어둠을 봉쇄하는…… 그런 소리들을
*영화 <위대한 침묵>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지우 시인 /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외 1편 (0) | 2020.01.19 |
|---|---|
| 신경림 시인 / 그날 외 2편 (0) | 2020.01.18 |
| 최승호 시인 / 무인칭 대 무인칭 외 1편 (0) | 2020.01.18 |
| 최하림 시인 / 나는 선(禪)맛 느낀다 (0) | 2020.01.18 |
| 신달자 시인 / 미로(迷路) (0) | 2020.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