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우 시인 /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1
적설 20cm가 덮은 운주사(雲舟寺), 뱃머리 하늘로 돌려 놓고 얼어붙은 목선(木船) 한 척 내, 오늘 너를 깨부수러 오 해머 쇠뭉치 들고 왔다 해제, 해제다 이제 그만 약속을 풀자 내, 정(情)이 많아 세상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세상이 이 지경이니 봄이 이 썩은 배 하늘로 다시 예인해 가기 전 내가 지은, 그렇지만 작용하는 허구를 작파하여야것다
2 가슴을 치면 하늘의 운판(雲板)이 박자를 맞추는 그대 슬픔이 그리 큰가 적설 20cm, 얼음 이불 되어 와불 부부의 더 추운 동침을 덮어 놓았네 쇼크로 까무라친 듯 15도 경사로 누워 있는 부처님들 석면(石眼)에 괸, 한 됫박 녹은 눈물을 사람 손으로 쓸어 내었네
3
운주사 다녀 오는 저녁 사람 발자국이 녹여 놓은, 질척거리는 대인동 사창가로 간다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 놓을지라도 오늘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황지우 시인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행숙 시인 / 그곳에 있다 (0) | 2020.01.19 |
|---|---|
| 천양희 시인 / 삶에게 외 1편 (0) | 2020.01.19 |
| 신경림 시인 / 그날 외 2편 (0) | 2020.01.18 |
| 류인서 시인 / 침묵수도원* (0) | 2020.01.18 |
| 최승호 시인 / 무인칭 대 무인칭 외 1편 (0) | 2020.01.18 |